평생 하고 싶은 일, 직업이 됐나요?

입력 2010-01-22 17:34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 중에서

요즘 평균수명이 길어지면서 인생2모작을 하는 이들이 많다. 인생 전반부에서 다른 길을 선택해 개작(改作)에 성공한다면 2모작보다 효율적이지 않을까. 숲으로 되돌아 가지 않았던 길을 선택, 인생 개작에 성공한 이들을 만나봤다.

27일부터 2월 2일까지 서울 인사동 갤러리 포유에서 특별초대전을 갖는 퀼터 임영해(53)씨는 “하고 싶은 일을 접어둔 채 하던 일이라는 이유로 계속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했다. 임씨는 서강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뒤 삼성휴렛팩커드에서 일했다. 1994년 당시 여성 중에는 최고위직(차장)으로 잘 나갔던 그는 ‘컴퓨터를 그만하고 싶어서’ 사표를 던졌다. 서른일곱 살에 ‘아줌마’가 된 그는 하고 싶었던 것들을 배웠다. 도자기 요리…. 그 중 퀼트가 딱 맞았다. 평생 할 만한 일이라는 확신을 얻은 그는 동아리활동을 하면서 전문가들에게 본격적으로 배웠다. 2001년 캐나다로 이민 간 그는 그곳에서 퀼트 강사를 하면서 실력을 인정받아 초대전도 가졌다.

“이민 1세대들은 현지에 동화되기 쉽지 않습니다. 퀼트를 통해 현지인들과 교감을 갖게 돼 그들만의 세상에 들어갔습니다.”

그는 퀼트 강의 때 조각보를 소개하는 등 한국문화 전도사 노릇도 하고 있다. 임씨는 이번 전시회가 “15년 컴퓨터엔지니어 경력을 뒤로 하고 새로 잡은 바늘로 누빈 또 다른 15년을 보여주는 전시회”라고 소개했다.

가지 않은 길을 가기 위해 경력만 포기한 것이 아니라 아예 공부를 다시 시작한 이도 있다. 지난해 말 제23회 섬유의 날 패션디자인 공로 부문 지식경제부장관 표창을 받은 패션디자이너 오서형(40)씨는 공학도였다. 고분자공학을 전공한 그는 삼성그룹 공채로 입사, 제일모직에서 기획과 마케팅 업무를 했다.

“입사 5년차 때 갈증이 일었습니다. 나만의 세계를 갖고 세상과 소통하고 싶었습니다.”

자신만의 색깔을 표현할 수 있는 창조적인 일을 찾던 그의 눈에 들어 온 것이 패션이었다. 포트폴리오가 창조성을 인정받아 3년 전액 장학생으로 삼성디자인전문학교(SADI)에 1999년 입학했다.

“SADI는 가능성을 보는 학교였기에 가능한 일이었지요. 3년 동안 밥 먹고 잠자는 시간까지 아껴가며 공부했습니다.”

수석졸업하고 독일 에스까다 코리아에 취업했던 그는 2007년 개인브랜드 트루 스타일 & 테일러(TST )를 론칭했다. 디자이너 브랜드 여성복과 고급맞춤 남성복을 하고 있으며, 올해 유니폼 사업부를 신설하는 등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박명원(31)씨도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직장인에서 학생으로 후퇴한 경우다. 광고홍보학을 전공하고 광고회사에서 일하던 그가 새로 선택한 일은 푸드스타일리스트. 흔히 여성의 영역으로 꼽히는 이 일을 하기 위해 그는 사표를 던졌다. 2008년 봄, 서른을 눈앞에 둔 때였다.

“푸드스타일리스트를 소개하는 TV 프로그램을 봤어요. 정말 내가 즐겁게, 또 잘 할 수 있는 일이란 확신이 들었죠.”

영국에서 어학연수를 할 때 일본식국수집에서 아르바이트로 요리도 해봤고, 대학에서 디자인을 부전공으로 해 색감과 모양 꾸미기에 자신 있었다는 것. 그는 그해 7월 라퀴진 푸드코디네이터 12기로 입학, 1년 과정을 들었다. 동기 32명 중 31명이 여자였다. ‘경상도 사나이’라는 그는 그 이후 여성스러워졌다는 소리를 듣게 됐다고. 청일점이어서 덕도 봤다. 졸업과 동시에 남성 푸드스타일리스트를 원한 휘슬러코리아 요리개발팀에 취직이 됐다. 지난해 말 다양한 경험을 하기 위해 사표를 내고 나온 그는 요즘 프리랜서로 ㈜바른손 외식사업 메뉴를 개발하고 있다. 그는 “백마디 말이 아닌 한가지 요리의 표현으로 사람을 웃게 만드는 푸드스타일스트가 되고 싶다”고 했다.

취업까지 했다 방향전환을 한 이들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사는 지금 정말 행복하다”고 입을 모은다. 바늘을 잡으면 모든 근심을 잊게 된다는 임씨는 “소속감을 찾기 어려운 주부들은 자신의 존재가치를 느낄 수 있는 일을 찾아 해보라”고 권했다. 오씨는 “스스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하면서 사는 것이 진정한 삶이고, 거기서 얻는 기쁨의 크기는 느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재도전에 있어 나이와 환경은 중요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박씨는 “기득권을 포기하고 새로 시작한다는 것은 어렵지만 열심히 하면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다”며 “광고는 반응이 한참 뒤에 오지만 푸드스타일링은 즉석에서 반응이 와 너무 행복하다”고 했다.

김혜림 선임기자 m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