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語에 담아낸 어머니의 기억… 이대흠씨 시집 ‘귀가 서럽다’

입력 2010-01-22 17:46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서 희망과 따스함을 발견해온 이대흠(42) 시인의 네 번째 시집 ‘귀가 서럽다’(창비)는 어머니와 고향에 얽힌 기억들을 풀어낸 시들이 많다. 시인은 고단한 삶을 견디며 늙어가는 어머니에 대한 마음을 애절하게 빚어낸다.



“구강포 너른 뻘밭/길게도 잡아당긴 탐진강 상류에서/당겨도 당겨도 무거워지기만 한 노동의 진창/어머니의 손을 거쳐간 바닥은 몇평쯤일까/발이 가고 손이 가고 마침내는/몸이 갈 바닥”(‘바닥’ 일부)

“명절 때면 어머니는 팔남매 자식들/봉다리 봉다리 챙겨주기 바쁘다/(중략)/어머니의 손을 거친 봉다리들은 어김없이 배가 불러 돌아온다/몇달에 한 번쯤 뵈는 어머니의 얼굴/날이 다르게 검버섯이 늘어난다”(‘어머니의 봉다리’ 일부)

싱가포르로 돈 벌러 떠난 큰형에게 보낼 글을 어머니가 시인에게 받아적으라며 불러주는 상황을 묘사한 시에는 자식 사랑이 절절히 배어있다. “뙤약벹에서 내 자석이 피땀 흘려 번 돈을/호박씨 까묵대끼 톡톡 끼리고 있짱께 중치가 멕힐락 함마이잉/이참 월급도 써불고/느그 성 나오먼 통장이나 한나 줘사 쓸 것인디/에미 에비 있능 것이 도와주지도 못함서/하면서 이내 눈물 글썽이셨는데”(‘오래된 편지’ 일부)

자식에 대한 한없는 사랑을 베푸는 어머니는 그래서 시인에게 “입이 울리고 코가 울리고/머리가 울리고/이내 가슴속에서 낮은 종소리가 울려”(‘어머니라는 말’) 나오는 그런 존재로 다가온다.

순박하고 따뜻한 마음을 지닌 고향 사람들을 구수한 남도 사투리로 펼쳐낸 시는 마음을 훈훈하게 한다. “기사 양반! 저짝으로 조깐 돌아서 갑시다/어칳게 그란다요 버스가 머 택신지 아요?/아따 늙은이가 물팍이 애링께 그라제/쓰잘데기 읎는 소리 하지 마시오/저번챀에 기사는 돌아가듬마는…/그 기사가 미쳤능갑소//노인네가 갈수록 눈이 어둡당께/저번챀에도/내가 모셔다드렸는디”(‘아름다운 위반’ 전문)

고향과 관련된 시가 대부분이지만 사랑의 상실과 부재(不在)로 인한 외로움을 노래한 시들도 보인다. “해는 지고 사람 많은 항구에/한 사람이 없네/온몸이 눈물이라/물의 슬픔은/물의 울음은 드러나지 않네”(‘그러니 어찌할거나 마음이여’ 일부)

고은 시인은 추천사에서 “웬 절창이 이리도 많노! 지난날의 청천강 저쪽에 백석의 절제가 새겨지고 이로부터 남에 대흠 그대의 진솔이 들끓는다”며 시인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라동철 기자 rd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