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찬송] 내 평생에 가는 길 413장(통 470장)

입력 2010-01-22 17:37


위암 말기 시한부 선고받은 아버지

병원서 돌아오는 길 나즈막히 읊조려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

찬송가 413장이다. 나는 이 찬송을 1994년 10월, 돌아가신 아버지의 입관예배 때 불렀다. 아버지는 그해 8월 암 진단을 받으신 후 두 달여 뒤에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원래 하나님을 믿는 분이 아니셨다. 굳이 말하자면 유교적 전통 속에 사셨던 분이다. 젊었을 때부터 아버지는 예인의 기질이 있었다. 같은 동네에서 자란 큰 어머니들의 회고에 따르면 아버지는 소년 시절부터 소 먹일 꼴을 베거나 산에 나무하러 갈 때면 잎사귀를 따다가 풀피리를 구성지게 잘 부르셨다. 어른이 돼서는 꽹과리, 장구, 북 등 사물을 멋지게 다뤄서 동네 농악대의 상쇠가 되고, 전국 농악경연대회에 참석해서 입상도 하셨다. 술도 좋아하시고, 담배도 잘 피우고, 춤도 잘 추시는, 한 마디로 풍류남아셨다.

그런 아버지가 한편 걱정스러웠던 기억도 있다. 동네 교회학교 노래 중에 “술 마시고 장구치고 죄만 짓다가 오늘밤에 죽으면 어찌 하리요. 유황불이 펄펄 끓는 지옥으로 이를 갈며 슬피 울며 끌려가겠네”라는 가사가 있었다. 그 찬송가를 부르면서 나는 ‘술 마시고 장구 치는’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라 어린 마음에 얼마나 근심이 컸는지 모른다.

극심한 생활고 속에서도 늘 낙천적인 미소로 사셨던 아버지께서 94년 여름에 위암 선고를 받으셨다. 암 세포가 간까지 퍼진 말기 상태셨다. 암 진단을 받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뒷자리에 앉으신 아버지께서 창밖을 내다보며 조용히 노래를 읊조리셨다. 가만히 들어보니 찬송가가 아닌가! 그걸 어떻게 아시느냐고 여쭈니까, 아버지는 “어릴 때 교회를 다녔다”고 말씀하셨다. 이후 평생 교회를 등지고 살아오신 아버지께서 죽음을 앞둔 절대고독의 시간에 어릴 적 교회에서 불렀던 찬송가가 불쑥 떠오른 것이었다. 나는 그것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했다.

그 후 아버지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시고, 새벽기도부터 각종 예배에 나가셨다. 그리고 식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우리 집 안방에서 평온하게 숨을 거두셨다. 병원 영안실에서 입관예배를 드릴 때 내 입에서 이 찬송이 흘러나왔다. 한 사람씩 따라 부르면서 감동이 온 방을 퍼져갔다.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주검 앞에서 큰 은혜를 받았다. 그날 이후 나의 1번 찬송은 이것이 됐다. 어려울 때, 힘들 때마다 이 찬송은 나로 하여금 하늘나라를 바라보게 하고, 영생의 확신을 다지게 한다. 세상의 삶에서 큰 힘을 준다.

조해진(한나라당 국회의원·일산참된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