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365] (土) 탕자를 보낸 아버지의 뜻

입력 2010-01-22 17:49


찬송 : ‘내 진정 사모하는’ 88장(통 88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시편 107편 10~11절

묵상 :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이라”(시 107:10~11).


신자가 환경적으로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인 것 같은 영혼의 상태가 될 때, 그들의 생각과 하나님의 판단에는 현저한 차이가 있습니다. 사람은 항상 고난과 시련의 원인을 물리적인 환경에서 찾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추적하여 대부분 마음에 들지 않는 한 사람을 찾아내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때 항상 나는 내 편이기 때문에 공정한 판단을 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자신이 받은 상처는 생채기까지 보듬으면서 남은 창으로 찔러도 기억하지 못할 때가 허다한 것이 타락 이후의 인간 본성이 아닙니까? 결국 그 사람을 고치려 들거나, 다시는 보지 않을 거라 다짐하는데 둘 다 미움으로부터 오는 것일 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판단은 다릅니다. 시인의 말에 귀를 기울여 보십시오. 고난을 당하는 이유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물론 하나님의 뜻대로 신앙의 정절을 지키려고 할 때 겪는 고난은 예외입니다.

그러나 신자가 겪는 고난에는 항상 하나님의 섭리가 묻어 있습니다. 선하고 인자하신 하나님은 때로 당신 자녀들이 그릇된 길을 가려할 때 내버려 두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당신의 자녀들을 포기하고 버리셨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아래 사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이며 주님을 멀리 떠난 다음에 그들이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 알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탕자 아버지를 떠올려 보십시오. 아버지는 탕자가 재산을 나누어 달라고 할 때 거절할 수도 있었고, 집을 떠나겠다고 할 때 하인을 시켜 못 떠나도록 가둘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허랑방탕한 꿈을 꾸고 있는 아들을 단지 옆에 두고 있는 것이 아들과 함께하는 삶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들이 먼 나라로 떠나도록 허락하였습니다. 그리고 철없는 아들은 모든 것을 잃어버린 후에야 자기가 당연하게 누리고 있었던 모든 것들이 아버지의 사랑이었음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낮추시고 고통 받게 하시지 않고는 우리의 어두운 마음이 당신께로 돌아서지 않을 것을 아시기에 사랑으로 징계하십니다.

그 사랑의 회초리 앞에서 하나님께 원망하며 소리치시겠습니까? 혹은 탕자처럼 집을 떠나보려 하십니까? 신자가 내디딜 가장 지혜로운 걸음은 다시 아버지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기도 : 하나님, 저희가 저희의 뜻대로 가게 아니하시고 무한하신 지혜로 늘 돌보아 주셔서 감사드리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김남준 목사 (평촌 열린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