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중 수백명, 트럭 막고 돌 던지며 “물 내놔라”
입력 2010-01-21 18:10
한국 구호팀 아찔했던 ‘약품 수송작전’
한국교회의 구호물품을 싣고 가던 트럭이 20일 오전(현지시간)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소나피(Sonapi)공단 입구에서 뜻밖의 습격을 받았다. 주민들이 트럭을 막아선 채 돌을 던지며 “물을 내놔라”고 요구했다. 유엔군이 재빨리 개입해 다행히 큰 피해는 없었다.
백삼숙 선교사(아이티 사랑의교회)의 구호팀이 소나피공단 입구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9시. 미션은 이 곳 창고에 보관 중인 약품을 빈민가 시티솔레의 병원에 전달하는 것이었다. 병원은 포르토프랭스 북쪽으로 3.5㎞정도 떨어져 있다. 소나피는 지진 발생 이후 구호물품과 약품이 모이는 집결지다.
소나피 입구엔 이미 수천명이 모여 있었다. 주민 부치(25)는 “공단 안에만 들어가면 물과 음식을 공짜로 받을 수 있고 아픈 사람은 치료도 받는다”며 “제발 나를 트럭에 태워 안으로 데려가 달라”고 구호팀에 애원했다. 한국팀 트럭이 주민 대여섯명을 태우고 들어가려하자, 이번엔 유엔군이 입구를 막았다. 뒤따르던 앰뷸런스 유엔차량 대형유조차 경찰차 등이 군중과 뒤엉켜 버렸다. 일부 청년들은 “유엔은 가라”고 구호를 외치며 몸싸움을 벌였다. 1시간30분 만에 겨우 소나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트럭에 약품과 물, 음료수를 급히 실은 뒤 소나피를 나선 시각은 오전 11시. 주민들은 더 많아졌고, 1만명은 넘어보였다. 지프가 앞장서고 트럭이 뒤따랐다. 소나피를 벗어난 순간 도로 한가운데 세워둔 바리케이드가 보였다. 청년들은 무장 지프는 그냥 보내고 다시 바리케이드를 쳐 트럭을 막아 세웠다. ‘아차’하는 순간 수백명이 트럭 주변에 모여들었다. “진료소 환자들에게 전달해야 할 물품이니 빨리 길을 터 달라”고 설득했다.
“물을 싣고 있는 걸 다 봤다. 내놓고 가라.” 성난 주민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돌을 던졌다. 사방에서 수십개의 돌이 트럭을 향해 날아왔다. 몽둥이로 트럭을 내려치는 이들도 있었다. 지프에 타고 있던 기자와 백 목사가 차에서 내려 트럭으로 달려갔다. 유엔군과 경찰도 쫓아왔다. 청년들이 흩어졌다.
상자가 깨지고 트럭이 약간 찌그러졌지만 일행은 무사했다. 바리게이드를 치우고 길 위의 돌멩이를 걷어냈다. 다시 시티솔레를 향해 트럭이 움직였다. 트럭은 가속페달이 고장 나 몇 번 길 위에 멈춰섰다. 지나가던 유엔차량의 호위를 받으며 무사히 진료소에 도착했다.
국경없는의사회에서 운영하는 진료소 밖에는 환자 수십명이 치료 받기 위해 줄 서 있었다. 이날 아침 다시 규모 5.9 여진이 일어나면서 환자가 더 늘었다. 진료소 안에는 수백명의 환자들이 누워있었다. 침상은 여전히 부족했다.
대통령궁 앞 샹마르스 광장에는 1만2000여명이 천막을 치고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현지인 드샹(23)은 “정부는 코빼기도 안 내민다”며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공동취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군이 점령한 대통령궁 뒤로 해가 뉘엿뉘엿 기울고 있었다. 아이들은 길바닥에 담요를 깔았다. 긴 하루가 저물고 있다.
포르토프랭스=글·사진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