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코너-김명호] 중도파의 분노
입력 2010-01-21 18:22
19일 치러진 미국 매사추세츠주 상원의원 특별선거 결과는 중도파(中道派)의 분노가 나타난 것이다.
이 선거는 고(故) 에드워드 케네디의 잔여 기간 후임자를 뽑는 1개 주의 보궐선거에 불과하다. 산술적으로 따져도 50개 주의 100명 상원의원(각 주 2명씩) 중 한 명일 뿐이다.
그런데 공화당 스콧 브라운 후보의 당선이 워싱턴 정치를 뒤흔들어 놓고 있다. 사실상 단독의결을 할 수 있는 민주당의 ‘슈퍼 60석’이 허물어짐으로써, 워싱턴 정치 판세가 뒤바뀌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곳은 존 F 케네디와 에드워드 케네디 형제가 반세기 가까이 상원 의석을 차지하던 지역이다. 상하원 통틀어 1970년 선거에서 공화당 하원의원이 당선됐을 뿐일 정도로 민주당의 철옹성이었다. 그만큼 워싱턴에 주는 충격은 크다. 선거가 끝난 다음날, 워싱턴을 하루 종일 휘감는 단어가 있었다. ‘Anger(분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선거결과에 대한 질문에 “국민이 화났다(anger). 그리고 실망했다(frustrated)”고 한마디로 규정했다. 로버트 기브스 백악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기자들에게 매우 시달렸다. 기자들은 이번 선거 결과가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중간평가가 아니냐’ ‘건강보험 개혁법안은 결국 폐기되는 것 아니냐’고 직설적으로 물었다. 이런 질문을 요령 있게 넘어가던 깁스 대변인도 결국 “이제 분노가 우리를 향하고 있다. 우리가 책임 있는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고 인정했다. 물론 대통령이나 대변인은 국민들의 분노가 지난 1년 동안 생긴 게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긴 했다. 그 이전 8년 동안 차곡차곡 쌓인 것이라고 말해, 현 정권에 대한 분노만을 표시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나타냈다.
하지만 오바마가 조지 W 부시 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와 실망으로 당선됐는데, 1년이 지난 지금 비슷한 분노가 오바마를 궁지에 몰아넣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다.
선거에서 이긴 브라운도 자신이 이긴 것은 “워싱턴 뒷거래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라고 표현했다. 선거 결과에 반영된 이 분노는 중도성향(independent) 유권자들의 분노이다. 언론들은 중도성향 유권자가 210만명으로 민주당 소속 유권자 150만명, 공화당 소속 유권자 50만명을 합친 것보다 많다고 전했다.
이들의 분노가 민주당의 철옹성을 깨뜨린 것이다. 브라운이 말한 ‘워싱턴 뒷거래’는 진보와 보수 양쪽의 강경 세력들이 싸우기만 하고, 그들끼리 주고받는 타협을 의미하는 것이다. 오바마는 일부 건강보험 반대 의원들을 설득하기 위해 편파적인 지역구 지원을 해줬다. 의원 빼내오기도 했다. 공화당은 오바마와 민주당의 정책에 무조건 반대만 일삼았다.
골수 공화당 세력들이 선거지원 활동을 해주며 분위기를 띄우긴 했지만, 브라운은 중립적 성향을 갖고 있다. 그는 선거 초반부터 자신을 ‘중립성향의 후보’ 또는 ‘국민의 후보’라고 표현했다. 언론 인터뷰에서는 민주당 오바마의 대북정책을 지지한다는 발언도 했다. 또 선거가 끝난 뒤에는 건강보험 개혁안의 좋은 점을 살리겠다고도 밝혔다.
그런 중도성향의 그가 중도파 유권자들의 분노에 힘입어 뒤집기에 성공한 것이다. 민주당 마샤 코클리 후보는 선거가 한 달도 남지 않은 지난 크리스마스 때 선거운동을 제쳐두고 2주간 휴가를 갈 정도로 여유가 있었다. 당시 지지도는 70%가 넘어 어느 누구도 민주당 승리를 의심치 않았었다.
정치판에서 중도파의 분노는 무섭다. 매사추세츠주 중도파들은 워싱턴에서 벌어지는 그들만의 리그에 역겨움을 느꼈고, 그래서 뭔가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느 때보다 양극단으로 갈라진 미국의 정치현실에 경고를 보낸 것이다. 그것이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상관은 없었다.
메사추세츠 선거에서 중도의 분노를 읽으면서 세종시를 생각한다. 이렇게 만들었다, 저렇게 바꾸었다, 제자리에 놓았다 하면서 그들끼리 치고받는 세종시 말이다. 한국의 중도파들도 인내심이 소진될 때가 돼가는 것 같다.
워싱턴=김명호 m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