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나라당, 이렇게 무력해서야

입력 2010-01-22 00:39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그제 “이미 어떻게 결정하겠다는 것을 밝히고 토론하자는 것은 토론이 아니다”며 세종시 당론 변경 논의를 진행하자는 정몽준 대표의 제의를 일축했다. 말이 토론이지 수정안 당론을 결정하기 위한 사실상의 투표에 응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국민과의 약속이 중요하다며 원안+α 이외에는 대안이 있을 수 없다고 일관되게 주장한 박 전 대표 입장에선 충분히 할 수 있는 얘기다.

그럼에도 세종시 당론을 변경하려는 시도 자체를 막는 것은 평소에 누구보다 의회민주주의의 가치와 원칙을 강조해온 그답지 않다. 독선으로밖에 이해가 안 된다. 정 대표는 “당의 중요한 의사결정이 당 대표나 어느 한 사람의 의견에 따라 결정될 정도로 폐쇄적이고 비민주적 구도로 돼서는 안 된다”고 개탄했다. 백번 옳은 지적이다. 당론을 바꿔야 할 사정이 있다면 충분한 토론을 거쳐 정해진 절차에 따라 결정된 대로 처리하면 그만이다. 그것이 민주주의다.

당헌 72조엔 당론 결정과 변경에 관한 사항이 규정돼 있다. 당론은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 출석의원 과반수 찬성으로 결정된다. 하지만 당론 변경은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가능하다. 함부로 당론을 바꿀 수 없게 일반 안건과 달리 소수 의견이 채택될 수도 있는 소수결(小數決) 원칙을 적용했다. 한나라당 의석수가 169석인 점을 고려할 때 56명 이상이 반대하거나 기권, 불참하면 당론 변경을 막을 수 있다. 친박계 의원은 60명 안팎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상황에서 원안 추진이 진정 국가를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면 박 전 대표가 토론이나 표결을 거부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세종시 문제는 고집을 부려서 해결될 사안이 아니다.

이제 적어도 여당 내에서만큼은 세종시 논란에 마침표를 찍어야 할 때가 됐다. 당 내부의견조차 조율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국민과 야당을 설득하겠다는 건지 매우 실망스럽다. 국가적 난제가 산적해있는데 국정을 책임진 여당이 무작정 세종시 문제에만 매달려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당론 변경이든, 아니든 결정은 빠를수록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