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판사 위협은 부끄러운 악습이다
입력 2010-01-21 18:16
이목을 끌었던 주요 사건들에 대해 법원이 잇따라 무죄 판결을 내리자 보수단체 반발이 격화되고 있다. 일부 보수단체 관계자들이 대법원장 공관 주변에서 집회를 갖고 이용훈 대법원장의 사퇴를 촉구하다가 대법원장 차량에 계란을 던지는 일까지 벌어졌다. 앞서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에게 무죄를 선고한 판사와 용산참사 수사기록을 공개하라고 판결한 판사 자택 인근에서도 규탄 집회가 열렸다.
판결을 수용하기 어렵고, 분한 심정이더라도 해당 판사 집 앞으로 몰려가 확성기를 틀어놓고 비난 구호를 외치는 행동은 1950년대의 악습이나 다름 없다. 의사표현의 자유를 넘어 판사들에게 압력을 가해 판결에 영향을 주려는 것으로 비쳐져 사회적 공감대를 얻기 힘든 것은 물론이요, 오히려 보수단체들이 비난받을 소지가 없지 않다.
법원이 관련 판사들에 대한 신변보호 조치를 취한 점도 주목해야 한다. 판사들에게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려는 보수단체는 없을 것으로 믿는다. 하지만 한 판사의 경우 “출근길을 미행당했다”고 전한 것처럼 해당 판사들은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있는 게 현실이다. 보수단체들은 괜한 오해를 불러 일으키는 협박성 시위를 멈춰야 한다. 감정적 대응은 사태 해결에 도움이 안 된다.
한나라당 지도부는 ‘사법 독선’ ‘정권 붕괴 세력에 죽창을 줬다’는 등 자극적인 표현을 사용하며 법원을 성토하고, 대법원장 책임론을 제기하고 있다. 보수세력을 대변해야 한다는 여당의 입장은 어느 정도 이해되나, 사법부와 정면충돌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우리 사회를 더 깊은 갈등의 늪으로 끌고 가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사법부는 ‘사법 독립’만을 내세울 계제가 아니다. 판사 개인의 이념이 곁들여진 주관적 판단이 중대한 사건의 판결에 지나치게 반영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들여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 재판에 계류 중인 유사 사건들이 적지 않다. 사법부가 이들 재판을 통해 헌법에 명시된 대로 법률과 양심에 따른 판결이 이뤄지고 있다는 믿음을 다수 국민들에게 주지 못하면 엄청난 위기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