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손수호] 내셔널 트러스트

입력 2010-01-21 18:19

‘국민 신탁(National Trust)’. 이름만 보면 무슨 투자회사 같다. 실제로도 부동산에 관심이 많고 큰 돈을 모아 거래하기도 한다. 보통의 신탁행위가 개인이나 기업의 이익을 위하는 데 비해 자연환경이나 역사유적의 보전 등 공익을 목적으로 한다.

공공적 가치를 중시하는 측면을 보면 좌파적 색채가 농후하다. 그러나 행동은 철저히 우파적이다. 모금을 하고 경매시장을 기웃거린다. 현재 진행 중인 신두리와 계양산 보전운동을 보면 이들의 활동상황이 명확히 잡힌다.

신두리 땅 신탁운동은 충남 태안군 원북면 신두리 일대 42만 평의 땅을 타깃으로 삼고 있다. 이곳은 천연기념물 신두리 해안사구(海岸砂丘)에서 불과 100여 미터 떨어져 있어 생태적 가치가 높다. 그런데도 한 기업이 24홀짜리 골프장을 건설하다가 경영난에 몰려 일대 부지가 매물로 나왔다. 예상가는 70억원 선. 이 땅을 사들여 매립 이전의 바다로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계양산은 녹지비율이 낮은 인천에 산소를 공급하는 천혜의 자연이다. 이 역시 골프장으로 만들려는 움직임을 저지하기 위해 ‘한 평 사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 280평을 위한 2억8000만원이 목표다.

매입에 성공하면 ‘양도불능의 원칙’이 적용되는 사회적 소유로 묶어 영원한 시민유산으로 보전한다는 방식이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적 가치의 절충, 정부와 민간, 제도와 운동의 중간 지점에서 절묘한 역할을 해내는 것이다.

내셔널 트러스트는 1895년 영국에서 목사 변호사 사회활동가로 구성된 3명의 시민 담화에서 시작돼 시민사회의 열렬한 호응을 이끈 이후 1907년 취득세를 면제해주는 내용의 내셔널 트러스트법 제정으로 날개를 달았다. 현재에는 오스트레일리아, 네덜란드, 미국, 캐나다 등 세계 30개 나라가 도입했다. 종주국 영국은 국토의 1%가 이 단체 소유이며, 회원이 430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아이작 뉴턴이 사과의 낙법을 터득한 곳으로 알려진 ‘울스토프 장원’이 대표적 문화유산이다.

한국은 지난 1990년대 중반 그린벨트 해제반대 운동을 펴면서 공감대를 넓히다가 2000년 독자적인 조직을 출범시켜 오늘에 이른다. 일반에는 생소하지만 강화 매화마름군락지, 나주 도래마을 옛집, 청주 두꺼비 서식지, 권진규 아틀리에 등 7곳을 관리하고 있다. 공모전을 통해 ‘꼭 지켜야 할 자연 문화유산’ ‘잘 가꾼 자연 문화유산’을 시상하기도 한다. 다음 주 월요일 이 단체가 의미있는 열 번째 생일을 맞는다.

손수호 논설위원 nam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