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형석의 아웃도어] 아웃도어 TV프로그램 유감

입력 2010-01-21 17:56


아웃도어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 인기다. 강추위에 얼음을 깨고 계곡에 들어가고, 폐교 운동장에 천막 치고 나무 때서 밥해 먹고, 폭설이 내린 지리산을 종주하고….

본래 여행이나 농촌체험 형식으로 진행되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 지난해 금융 위기와 시청률 폭등에 힘입어 주말 방송가를 장악하고 있다. 세트 만들 일 없고 출연진 분장도 신경 쓸 필요가 없는, 이름 하여 ‘리얼 버라이어티’ 혹은 ‘야생 버라이어티’. 한국식 야외 리얼 버라이어티가 도시에서 자라온 세대와 어릴 적 시골에서 자란 세대를 아우르는 새 장르가 돼 버렸다.

20여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는 아웃도어 라이프스타일이 대세였다. 주말이 되면 가족끼리 텐트와 돗자리를 챙겨 가까운 산이나 계곡으로 나가 고기를 굽고 밥을 지어 먹었다. 서울 북한산이나 도봉산, 우이동, 구기동, 정릉계곡, 도봉계곡 등에는 주말마다 고기 굽는 냄새가 났다. 송추, 장흥 같은 교외 계곡에는 투망이나 어항을 놓는 모습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사람들은 주변에서 돌판을 구해 즉석에서 로스구이를 해 먹거나 살아있는 개를 통째로 잡은 후 솥을 걸고 나무를 때서 끓여먹었다. 산과 계곡이 주말마다 북새통을 이룬 것이다.

지금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당시만 해도 주말을 보낼 놀이시설이나 공원도 변변치 않았고, 사람들의 환경의식도 그리 높지 않았다. 주중에 열심히 일하고 주말에 야외에 나가 스트레스를 푼다는데 누가 뭐라는 사람도 없었고, 그렇게 하는 게 꽤 건전한 여가생활처럼 여겨졌다. 그러다 보니 산과 계곡은 음식물 쓰레기와 냄새로 뒤덮였다. 급기야 1990년 국립공원을 비롯한 전국의 산과 계곡에 취사·야영 금지조치가 내려졌다. 캠핑이나 천렵 문화는 서서히 밀려나고, 명산 명소마다 콘도 호텔이 들어서고, 노래방 나이트클럽 같은 유흥시설이 난립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10여년이 흘러 왔다.

국민들의 환경의식은 그동안 크게 높아졌다. 아웃도어 라이프에 대한 열망도 다시 퍼지고 있다. 전국의 오토캠핑장마다 텐트가 가득하고, 주말이면 캠핑장비를 싣고 떠나는 가족을 자주 볼 수 있다. 사람은 사회적이고 조직적인 존재지만 원초적으로는 야생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야외생활에 대한 본능은 법으로도 막을 수 없다. 누구라도 시멘트로 둘러싸인 공간보다 풀 냄새, 꽃 냄새 나는 바깥에서 놀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아웃도어 버라이어티 프로그램들이 도시에서 자라나는 요즘 세대에게 시골 생활과 아웃도어 문화를 소개한다는 데 반론은 없다. 하지만 프로그램 내용이 너무 버라이어티 하기에 걱정도 된다. 아웃도어 활동은 절대 버라이어티 해서는 안 된다. 우리 아이들이 커서 TV에서 본 대로 ‘버라이어티’ 하게 아웃도어를 즐길까봐 겁난다. ‘자연을 즐기되 자신이 다녀온 흔적을 남기지 말자(Leave No Trace)’는 의미의 ‘LNT’라는 말을 기억해야 한다.

한형석<아웃도어 플래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