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빈 부패국 도우려면 총도 필요하다”

입력 2010-01-21 17:49


‘빈곤의 경제학’

아이티 지진 사태가 안타까운 것은 피해 규모가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크다는 점이다. 아이티를 흔든 지진은 진도 7.0이다. 지난해 중국 쓰촨성(진도 8.0)이나 2004년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진도 9) 지진 보다 규모 자체는 작았다. 그럼에도 인구의 3분의 1이 이재민이 되고 국가 기능이 마비될 정도로 막대한 타격을 입었다. 지진은 자연재해지만 거기에 인재가 더해져 피해는 더욱 증폭되었다.

아이티는 중남미에서 최빈국으로 꼽힌다. 1인당 국민소득은 600달러 수준이다. 먹을 것이 부족해 아이들이 진흙과자를 먹어야할 정도다. 건물은 튼튼하게 지을 여력이 없고, 위기에 대응하는 국가 정책도 전무하다.

1804년 독립한 아이티는 1915년부터 20년간 미국이 지배하는 것을 시작으로 미국의 영향력 아래 놓인다. 프랑수아 뒤발리에 독재정권 시기(1957∼86)에도 전폭적인 지원을 하다가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빌 클린턴 대통령은 1994년 아이티사태에 개입해 군부 쿠데타로 축출된 장-베르트랑 아리스티드 대통령을 복귀시키고 군을 파병하기도 했다. 아이티는 지금까지 34차례 쿠데타를 겪었고, 경제는 파탄이 났다. 그동안 미국이 깊숙이 개입해왔지만 아무 것도 나아진 건 없었다. 아이티가 지옥 같은 현재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분명하다.

옥스퍼드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인 폴 콜리어는 아이티 같은 나라를 어떻게 도울지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선진국이 가난한 나라를 돕는 전형적인 방법은 막대한 물질적 원조를 하는 것이다. 선진국 입장에서는 구체적으로 명시되는 액수 때문에 ‘할 일을 했다’고 생색을 내기에 좋다. 하지만 후진적인 권력체계를 갖춘 나라의 권력자들은 이를 마음대로 착복한다. 지금껏 이런 식의 지원으로 가난한 나라가 그 상황을 벗어나거나, 최소한 벗어날 조짐을 보였다는 사례는 없다.

콜리어가 말하는 최빈국은 60억 인구 중 20%에 해당하는 10억 명 가량이다. 그것도 ‘뒤처지고 와해되어 가고 있는 밑바닥 10억’이다. 흔히 20%의 선진국과 80%의 개발도상국이 있다고 하지만 개발도상국 사이에서도 격차는 벌어지고 있다. 아이티를 비롯해 미얀마, 캄보디아 등 중앙아시아 여러 나라와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 나라들이 수십 년째 제자리에서 꼼짝도 안 하고 멈춰있다.

자본과 인재가 선순환 하지 못하는 점은 최빈국이 겪는 큰 문제다. 선진국으로 유학을 떠난 인재는 대부분 모국으로 돌아오지 않고 더 좋은 기회를 찾아 선진국에 남는다. 천연자원 등으로 벌어들인 자원은 검은 돈이 돼 외국으로 유출된다. 이 돈이 국내에서 돈다면 경제발전에 기여할 수 있지만 대부분 수익성 높은 해외국가로 투자가 된다.

선진국의 태도는 미온적이다. 2006년 중국 부총리 쩡칭홍은 아프리카 나라를 순방하면서 연신 “우리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라는 말을 달고 다녔다. 아프리카 국가의 자원을 탐사하더라도 내부 정치에 간섭을 안 하겠다는 의미였다. 나이지리아 전 군부 독재자 사니 아바차가 사망하기 직전인 1998년 스위스 은행에 대규모 자금을 예치한 사실이 2000년 밝혀졌다. 하지만 스위스 정부가 협조하지 않아 추적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프랑스 기업은 최빈국에서 건설이나 천연자원 개발권을 따내기 위해 지불하는 뇌물을 기업 운영상 손해가 난 돈 정도로 처리해 왔다. 선진국에게 있어 자국의 이익보다 우선되는 것은 없다.

콜리어는 가난한 나라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 선진국이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의 주장은 논란의 여지를 있다. 상황을 바로 잡기 위해서 적극적인 군사개입도 서슴지 않아야 한다고 하기 때문이다. 콜리어가 이런 주장을 하는 근거는 최빈국이 스스로 덫에서 빠져나올 능력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1993년 소말리아에서 작전을 수행 중이던 미군 18명이 살해됐고 시체는 모가디슈 거리 이곳저곳으로 끌려 다녔다. 미국 내에서는 소말리아 철수 여론이 거세졌고, 이후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최빈국 분쟁에 대한 군사적 개입을 꺼렸다. 다음 해 르완다 내전이 발생했을 때 국제사회는 보고만 있었다. 결국 100만 명에 이르는 사람이 학살당했고 수백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바로 그렇기에 선진국의 군사적 개입은 최빈국의 쿠데타를 막고 안정된 정부를 만드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콜리어의 의견은 선진국의 군사적 개입에 다른 의도가 없다는 것을 전제할 때 설득력이 있다. 미국은 대량살상무기의 존재를 명분으로 이라크에 군대를 파병했지만 이것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면서 다른 속내가 있다는 비난을 받았다. 미국의 군사적 개입을 반대하는 쪽은 미국이 세계화를 명분으로 새로운 형태의 식민지를 만든다고 비판한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