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포성’ 유럽에선 어떻게 들렸을까
입력 2010-01-21 17:58
김광운·아벨스하우저 외 10인/역사비평사/한국전쟁에 대한 11가지 시선
1950년 6월 25일 발발해 53년 7월 27일 휴전으로 막을 내린 한국전쟁의 의미는 2005년 10월 포츠담에서 한국과 독일의 학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개최된 학술회의를 분기점으로 더욱 심화되었다. 그것은 양국 학자들의 시선을 심화시킨 결과와 마찬가지였는데 이는 서로가 분단 체험을 공유하고 있다는 동질감에 기인한다. 통일독일 이전에 서독은 남한을, 동독은 북한을 각각 지원하고 원조한 국가였다. 그런 의미에서 서독과 남한, 동독과 남한은 샴 쌍둥이처럼 닮은 꼴을 이루고 있었는 바, 양국 학자의 그런 교차 시선은 한국전쟁의 의미를 좀더 다각화하고 심층화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게 사실이다.
예컨대 북한에 대한 동독의 경제적 원조는 한국전쟁 발발 직후에 이루어졌다. 동독 국민전선의 국민위원회의 발의에 의해 1950년 9월 30일 결성된 한국원조위원회는 민간 기부금을 모아 57년 10월 31일 위원회가 해체될 때까지 약 4000만 마르크의 현금과 물품을 북한에 전달했다. 52년 6월 25일엔 국가적 차원의 원조조약이 체결되어 함흥 재건 및 북한 고아와 대학생들의 동독 파견이 이루어졌다. 국가 차원의 원조는 이런 기조로 60년까지 이루어졌는데 전체 원조 규모는 러시아 화폐 단위로 1억2270만 루블에 달했다. 동독이 이런 막대한 규모의 원조를 지속한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동독은 북한 원조를 통해 서독과의 경쟁에서 외교적 안정을 확보한다는 자체의 이해 관계를 추구했던 것이다. 이에 고무된 김일성은 1960년 레닌 탄생 90주년을 맞아 “우리가 만약 동독과 같은 위치에 있었다면 남한과의 통일은 훨씬 쉬었을 것”이라고 천명하기에 이른다. 그만큼 동구 사회주의 국가의 원조는 북한 정권의 강화를 가져왔던 게 사실이다.
반면 서독의 경우 한국전쟁으로 인해 고통받는 남한 주민에게 보인 관심은 매우 제한적이었다. 동독과는 달리 서독은 남한의 재촉이 있었는데도 56년 8월에야 서울에 영사부를 설치했다. 이것 조차 무역대표부를 설치하려 한 것을 한국에 대한 차별이라고 남한 정부가 반대한 결과였다. 분단에 대한 평가에서도 서독은 공통점보다 차이를 강조했다. 한국의 문제는 여러 측면에서 서독의 문제와 다르기 때문에 독일 통일 문제를 한국의 통일 문제와 외면적으로 연결시키는 것은 독일의 이해관계를 위해 거의 필요치 않다는 논지였다.
서독은 남한에서 자체적인 정치적 목적을 추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역에만 집중되었다. 서독은 비료, 기계, 전기전자제품, 화학제품 수출에만 열을 올렸다. 이로 인해 양국의 무역 관계는 매우 불균형했다. 한마디로 서독은 남한에게 있어 원조국이 아니라 장사꾼으로 비쳐졌다.
함흥이 동독의 원조로 인해 북한 최대의 공업단지로 거듭나고 있는 동안 남한에는 이렇다할 공업 거점이 마련되지 못했다. 더구나 동독은 함흥 건설을 독일식 도시가 아니라 북한인들의 독자적인 전유방식과 조형적 행동에 따라 진행시켰다. 동독은 1950년대에 북한 고아와 대학생을 국제적 연대라는 구호 아해 데려갔는 바 이들은 46개의 직업군으로 분류되어 기술교육을 받고 북한으로 귀국해 산업역군으로 일하게 되었다. 반면 남한의 경우 일단의 광산노동자들이 63년 12월 기술개발원조계획의 일환으로 서독의 루르지방 석탄 광산에서 일을 하게 됐지만 견습생을 받아들이는 데는 매우 유보적이었다.
이처럼 ‘개발원조’나 ‘연대의 수사학’ 너머 행위자들을 중심으로 독일과 한국의 관계사를 더듬다보면 한국전쟁으로 야기된 분단 이후의 상황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을 뛰어넘는 또다른 단층을 드러낸다.
미카엘 렘케 훔볼트대 교수가 ‘일어나지 않은 전쟁’이란 글에서 “한국전쟁이 동서독의 정치적 대립을 심화시켰지만 독일에 중요한 교훈을 남겼다”고 밝혔듯 한국전쟁은 때로 독일에게 약이 되고 남북한에게는 여전히 독으로 남아 있다. 한국 전쟁은 인류가 겪은 최악의 비극 중 하나지만 그 비극이 큰 만큼 교훈 또한 크다. 그 교훈 위에서 인류는 냉정 속 평화와 공존이라는 지혜를 얻었고, 나아가 20세기 말에는 냉전 자체를 거의 무너뜨렸다. 올해는 한국전쟁 발발 60주기다. 아직도 전쟁이 공식적으로 종결되지 못한 한반도야말로 평화와 공존의 지혜가 절실히 요구된다. 그 지혜가 5년 전, 포츠담에서 있었던 한국과 독일의 학자들의 토론 결과를 다듬어 엮은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라동철 기자 rd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