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고 볶고 호텔외식경영학과 교수·대학생 경로당에 음식대접
입력 2010-01-20 17:47
흰색 조리복을 입은 요리사들이 갖은 야채와 해산물을 자글거리는 기름에 볶고 있었다. 가스레인지가 내뿜는 벌건 불길은 검고 육중한 프라이팬을 들어올릴 듯한 기세로 솟구쳤다. 프라이팬을 앞뒤로 흔들며 재료가 타지 않도록 뒤집어 섞는 요리사들은 내내 진지했다.
20일 오전 8시10분쯤 서울 태평로1가 중식당 ‘루이’(Luii)의 주방은 분주했다. 광화문 ‘맛집’으로 알려진 이 식당은 오전 11시30분부터 손님을 받기 때문에 평소라면 아무도 출근하지 않았을 시간이다.
“볶음밥은 오래 볶아야 꼬들꼬들하고 맛있으니까 정성 들여 볶아야 해. 자장 소스는 너무 되면 어르신들이 먹기 불편하니까 평소보다 묽게 만들고.” 여경옥(47) 대표가 틈틈이 조리 과정을 지도했다.
여 대표는 볶음밥 70인분을 직원들과 함께 만들고 있었다. 이날은 여 대표가 교수로 있는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 호텔외식경영학과 학생들이 손수 지은 음식을 서대문 지역 노인들에게 대접하는 날이었다.
학생 중에는 한식당 ‘대장금’ 김인숙(3학년) 대표, 엠클래스컨벤션 박노운(4학년) 상무, KBS ‘6시 내 고향’에 출연 중인 윤정진(1학년)씨처럼 늦깎이 대학생을 자처한 요리 전문가들이 포진해 있다. 여 대표도 이 학교를 졸업했다. 학생들은 경로당 주방이 좁아 각자 음식을 만들어 가기로 했다.
오전 11시쯤. 제각각 음식을 짊어진 학생들이 홍은동 구립 포방터 경로당으로 몰려들었다.
할머니방과 할아버지방에 각각 차려진 식탁에는 볶음밥, 불고기, 잡채, 수삼 튀김, 갈비탕, 겨울배추로 만든 겉절이가 올랐다. 콩을 넣어 찐 백설기, 멍게를 닮은 열대과일 람부탄, 단팥빵은 후식으로 준비됐다.
할머니 23명, 할아버지 28명이 식탁에 둘러앉아 음식을 입에 넣더니 저마다 맛있다며 손뼉을 쳤다. “학생들이 이렇게 음식을 따숩게(따뜻하게) 해서 먹여주니까 좋지요. 고맙고, 미안하기도 하고.” 이명숙(82)씨가 오물거리던 잡채를 삼키고 조용히 말했다. 경로당 회장을 맡고 있는 송영복(75)씨는 “그동안 과일이나 과자 같은 선물은 가끔 들어와도 직접 찾아와서 밥을 지어준 건 처음”이라며 고마워했다.
이번 봉사를 학생들에게 제안한 김미자 학과장은 “더불어 사는 사회가 되려면 지역 주민에게 재능으로 봉사하는 것이 당연하다.
작은 나눔이라도 곳곳으로 확산된다면 소외된 사람들이 줄어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대학사회봉사협의회 장재희 행정원은 “전공 봉사 사업을 신청하는 대학이 꾸준히 늘고 있다. 전공 연계 봉사는 적성에 맞아 봉사의 질이 높고 참가자의 만족도도 높다”고 전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