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수첩 무죄판결] 2009년 민사재판 “일부 내용 사실과 달라”-2010년 형사재판 “전체 맥락 허위 아니다”

입력 2010-01-21 00:16


같은 사건 다른 판결 왜

법원이 20일 ‘PD수첩’ 제작진의 명예훼손 혐의 등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것은 보도 내용이 전체적 맥락에서 허위사실로 판단하기 어렵다는 취지다. 지난해 정정보도 청구 사건을 담당했던 서울고법의 판단과 상반된다. 법원은 형사·민사 재판부의 판결과 서로 다른 것이 논란이 될 조짐을 보이자 이례적으로 보충자료를 내고 판단 근거를 설명했다.

◇형사재판, 전체적 관점에서 사실여부 판단=지난해 6월 서울고법 민사13부(부장판사 여상훈)는 PD수첩의 보도 중 크게 3가지가 사실과 달라 정정보도를 하도록 결정했다. ‘특정 유전자를 가진 한국인이 인간광우병에 걸리기가 더 쉽다’ ‘미국에서 인간광우병이 발생해도 우리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조치는 없다’ ‘정부가 미국 도축 시스템을 잘 알지 못했다’는 내용이 허위보도라는 취지다.

하지만 서울중앙지법 형사13단독 문성관 판사의 판단은 달랐다. 한국인이 광우병 쇠고기를 먹을 경우 인간광우병에 걸릴 위험성이 94%에 달한다는 보도는 민사상 정정보도 대상은 될 수 있지만 농림수산식품부 전문가 회의에서 한국인이 유전적으로 광우병에 취약하다는 점이 논의됐고 관련 논문도 발표된 점을 고려하면 표현은 과장됐지만 허위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법원 관계자는 “정정 및 반론보도 청구 사건은 세세한 부분이 사실과 일치하느냐 여부를 중요하게 보지만 명예훼손에 대한 형사사건은 세세한 사실이 아니라 전체적인 보도 내용을 허위라고 볼 수 있느냐에 초점을 맞춘다”고 말했다. 따라서 일부 보도 내용이 허위로 인정돼 정정 및 반론보도 대상이 되더라도 전체적인 보도, 기사의 내용을 허위라고 볼 수 없다면 무죄가 선고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새로운 증거가 나왔기 때문에 민사재판과 다른 판결을 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주저앉는 소(다우너 소)가 광우병에 걸렸거나 걸렸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 보도가 허위라고 민사재판부는 판단했으나 일본과 캐나다에서 1997년 이후 태어난 소에서 광우병에 걸린 소가 나타나 보도가 허위라고 보기 힘들다고 적시했다.

◇검찰, “기초사실에 대한 판단이 왜 다른가”=그러나 검찰은 민사소송과 결과가 다른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명예훼손 판단 근거가 되는 재판의 기초사실에 대한 판단은 상반될 수 없다는 것이다. 검찰은 재판부가 공소 내용과 민사재판의 판결 내용을 근거로 하지 않고 다르게 정리한 것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6월 PD수첩 제작진을 기소할 때 민사재판부의 정정보도 판결 내용을 근거 중 하나로 제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사와 형사 사건은 재판이 갖는 독특한 성격 때문에 차이가 생긴다는 분석도 있다. 정정보도라는 관점에서는 사소한 오류라도 바로잡을 것을 명할 수 있지만 처벌을 전제로 하는 형사재판은 범죄에 대한 엄격한 증명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이제훈 기자 parti98@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