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금 3만원 ‘삼성상회’→계열사 65개·매출 200조 기업… 세계 초일류 ‘삼성’ 주춧돌 놓다
입력 2010-01-20 21:13
삼성그룹 창업주 고(故) 이병철 회장이 태어난 지 다음달 12일로 100년이 된다. 일제 강점기 때 자본금 3만원에서 시작한 삼성그룹은 지난해 주력 계열사인 삼성전자가 136조원의 매출과 10조9200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린 것을 비롯, 65개 계열사에 27만7000명(국내 17만3000명 포함) 직원을 거느리고 매출 200조원을 넘는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했다.
‘사업보국(事業報國)’ ‘삼성보다 국가가 더 중요하다. 국가가 더 부흥하면 산업은 저절로 더 잘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1983년 12월 비서실 회의)’는 기업가 정신으로 이 회장은 어두운 한국 역사를 거치면서 한국경제를 일으키고 세계 최고 일류기업의 토대를 마련했다.
1910년 2월 12일 경남 의령군에서 유복한 집안의 4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이 회장은 아버지로부터 300석에 달하는 재산을 받아 1936년 두 명의 지인과 함께 각각 1만원씩 출자해 경남 마산에 협동정미소를 창업했다.
10대 트럭을 보유한 마산일출자동차회사를 인수해 운수사업을 번창시키기도 하고, 토지투자사업에 진출했다가 실패를 맛보기도 했던 이 회장은 1938년 모든 사업을 청산하고 28세에 대구 수동(현 인교동)에 자본금 3만원으로 250평 남짓한 점포를 사서 ‘삼성상회’란 간판을 걸고 청과류와 건어물 수출에 나선다. ‘삼성(三星)’은 ‘크고 강력하고 영원하라’는 의미를 담았다.
이 회장은 삼성상회를 개업한 지 한 달쯤 지나 와세대 대학 시절 친구를 지배인으로 앉히면서 그때부터 삼성의 인재관리 원칙을 세웠다. ‘의인물용, 용인물의’(疑人勿用, 用人勿疑·의심이 가거든 사람을 고용하지 말고, 일단 채용했으면 대담하게 일을 맡겨라).
이후 ‘무역이 국가의 급선무’라고 판단한 이 회장은 1948년 서울 종로2가에 삼성물산공사 간판을 내걸었다. 한국전쟁과 휴전을 거치면서 국민들이 쓰는 소비 물자를 수입에만 의존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 이 회장은 제조업에 뛰어든다. 53년 설탕을 만드는 제일제당공업주식회사가 그 시작이었다. 54년 제일모직 설립에 이어 69년 삼성전자를 설립했다.
80년대에는 “기술을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신념으로 반도체와 컴퓨터 사업에 진출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는 신념으로 개인 사재 3분의 1을 털어 삼성문화재단을 설립했던 이 회장은 87년 11월 19일 78세에 타계했다.
삼성은 ‘호암 100년, 미래를 담다’라는 슬로건을 정하고 다음달 4일 기념음악회를 비롯, 5일 기념식과 10일 학술포럼, 어록 기념책자 발간 등을 준비 중이라고 20일 밝혔다. 출생지인 경남 의령과 삼성그룹의 모태가 된 대구에서도 동상제막과 기념음악회가 별도로 열린다.
이명희 기자 mh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