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포르토프랭스 르포] 구호품 트럭에 인파 몰려 “빵을 주세요” 아우성
입력 2010-01-20 21:37
“빵, 빵, 빵을 주세요.” “우리에게 지금 나눠주세요!”
순식간에 컨테이너 트럭이 서 있는 일대가 혼란에 빠졌다.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 지진 이재민들은 몸싸움을 벌이며 금방이라도 컨테이너를 부술 기세였다. 때마침 달려온 아이티 사랑의교회 백삼숙 선교사 덕분에 분위기가 진정됐다. 백 선교사는 “이 차엔 다른 곳으로 가야 할 물품이 실려 있다”며 “나를 믿고 차를 보내 달라”고 주민들에게 호소했다.
한국기아대책 긴급구호팀 김정민씨가 맡은 구호물품 트럭이 19일 아침(현지시간) 포르토프랭스에 도착하자마자 봉변을 당할 뻔한 순간이었다. 길을 찾기 위해 잠시 트럭을 세워두고 현지인 운전사에게 맡긴 채 자리를 비운 게 화근이었다. 주민 300여명이 몰려와 트럭을 에워싼 채 물품을 요구했던 것이다.
사상 최악의 지진이 발생한 지 1주일이 지난 포르토프랭스. 거리에는 전날부터 노점상이 등장했고, 이날은 미군이 직접 구호물품을 나눠주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불안한 상황이다. 유엔의 흰색 장갑차가 시내를 순찰하며 질서 유지에 안간힘을 쓰는데도 역부족이었다. 며칠 전에도 한국 구호팀이 구호품 5만 달러어치를 나눠준다는 소식에 이곳 축구경기장에 수만명이 몰려드는 소동이 벌어졌다고 한다.
미군은 구호품 배급과정에서 혼란이 계속되자 시내 곳곳에서 소규모 배급을 시작했다. 주민들은 “오바마”를 연호하며 환호했다.
김씨는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는 것 같지만 빠른 시일 안에 가시적인 구호가 실시되지 않으면 큰 혼란이 생길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포르토프랭스는 안정과 혼란의 갈림길에 서 있다.
앞서 지나온 아이티와 도미니카 공화국 사이 국경검문소가 있는 말파스. 그곳에서 아이티 포르토프랭스로 가는 길에는 희비가 엇갈렸다. 잿더미가 된 고향을 빠져나오는 사람들과 위험을 무릅쓰고 그곳으로 달려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이티 쪽에서 가끔 오는 트럭과 버스에는 사람이 가득했다. 그들의 표정엔 마침내 ‘안전지대’에 도착했다는 안도감이 어렸다. 아이티로 향하는 사람들은 주로 구호단체 관계자들과 구호물품을 실은 차량들이었다.
미국 보스턴의 건축사무소에서 일하는 스테파니 퍼민(32)은 남편 리처드와 함께 도미니카 수도 산토도밍고 버스터미널에서 아이티 국경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고향이 포르토프랭스인 퍼민 부부는 지진으로 고향의 가족들과 연락이 끊겨 직접 찾으러 가는 길이었다.
오전 7시 국경검문소에는 전 세계에서 답지하는 성금과 구호물품, 각종 복구 장비를 실은 차량 100여대가 유엔의 호위를 받으며 아이티로 들어가는 장관이 펼쳐졌다. 그 속에는 구호품을 실은 한국 긴급구호팀 차량도 보였다. 가는 방향은 엇갈렸지만 절망을 넘어 희망을 찾아가는 마음의 목적지는 같아 보였다.
포르토프랭스(아이티)=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