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발견] 메주꽃 피는 시절

입력 2010-01-20 19:13


“여자들아 네 할 일이 메주 쑬 일 남았구나/익게 삶고 매우 찧어 띄워서 재워 두소”

조선조 문인 장학유의 ‘농가월령가’ 11월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남았구나’ 구절에서 보듯 농경사회의 부녀자는 참으로 할 일이 많다.

그래도 메주 쑤는 날은 희망을 심는 작업이기에 즐겁다. 콩을 삶고, 절구에 찧는 동안 구수한 냄새가 진동한다. 온 식구가 달려들어 반듯하게 혹은 둥글게 메주를 만들어 재웠다가 렁에 매단다.

여기서 겨울 바람과 빛이 속삭이며 평화의 음식을 예비한다. 메주는 다시 겨우내 따뜻한 방에서 잠자는 사이에 짚에 있던 균이 옮겨 붙어 곰팡이가 피면서 질적 변화를 맞는다. 여기서 잘 건조된 메주를 소금물에 담가 발효시킨 액즙이 간장이고, 건더기가 된장이다.

메주가 된장이 되는 과정의 하이라이트는 메주꽃 피는 장면이다. 메주꽃은 간장과 된장이 분리되는 순간에 피어나는 하얀 곰팡이 털을 일컫는다. 거미줄 같기도, 이슬 같기도 하다.

세상에서 이처럼 신비롭고 고마운 꽃이 있을까. 밥상의 진객 된장은 이렇듯 아름다운 자연의 질서와 고도의 과학적 프로세스 속에서 탄생한다.

손수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