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남도영] 청와대를 믿어도 될까

입력 2010-01-20 19:13


요즘 청와대 사람들에게 세종시 해법을 묻기가 난처하다. 물어보는 기자도, 답하는 참모도 답답해한다. 뾰족한 해법이 없음을 기자도 알고, 참모들도 안다.

왜 이렇게 됐을까. 우선 박근혜 변수 관리 실패다. 지난해 2월 세종시 문제가 청와대 내부에서 논의되기 시작했을 당시, 청와대 참모들도 박 전 대표가 핵심 변수가 될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 “먼저 박 전 대표를 설득하고 시작해야 한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청와대 내부에서는 박 전 대표를 설득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들이 검토됐다는 후문이다.

지방선거에서 친박계와 친이계의 협조, 내각에서 친박계 대거 입각, 당 대표 문제까지 다양한 방안들이 나왔다. 이른바 ‘공동 정부’에 준하는 파격적인 아이디어들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아이디어들 중 추진되거나 실현된 것은 없다. 다만 청와대 핵심참모나 정부 고위관계자들이 친박계 의원들을 만나 세종시 수정에 대한 협조를 당부하는 정도가 전부였다. 박 전 대표를 포용하기 위한 파격적인 아이디어들은 전부 어디로 간 것일까.

가장 아픈 대목은 청와대의 세종시 수정 구상이 중요한 고비마다 차질을 빚었다는 점이다. 청와대가 세종시를 염두에 두고 그렸던 시나리오는 수정을 거듭했다.

정부와 청와대는 애초에 수정안 작성에 총력을 쏟았다. 제대로 만든 수정안이면, 충청권과 정치권을 설득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이러한 기대는 빗나갔다. 수정안이 나오면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대국민 설득에 나서고, 2월 국회에서 처리하겠다는 구상 역시 실패했다. 청와대가 그리는 시나리오들은 계속 수정을 거듭하더니 현재는 ‘장기전’이라는 얘기가 대세다. 언제까지 갈 지에 대해서조차 명확한 그림이 없는 듯하다. 대개는 4월쯤 결론을 지어야 한다는 얘기들이 많다. 6월 지방선거 이후까지 간다는 전망들도 나오기 시작했다. 한나라당 친이계 쪽에서는 국민투표와 같은 위험한 방안들마저 거론된다.

정치적 상황이 청와대 구상대로만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구상이 차질을 빚는 것은 냉정한 현실 인식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한 참모는 “박 전 대표가 이렇게 빨리, 그리고 이렇게 강하게 반대할 줄은 몰랐다”고 고백했다. 현실적인 정치세력인 박 전 대표의 생각을 제대로 읽지 못한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일까.

정운찬 총리의 역할도 아쉬운 대목이다. 정 총리는 본인과 청와대의 의도와는 달리 ‘세종시 총리’가 돼 버렸다. 애초 정 총리의 발탁 배경은 개혁 성향의 중도실용 컨셉트였다. 그런데 어느날 중도실용과 개혁은 사라지고 세종시만 남았다. 이 대통령의 친서민 중도실용 노선을 강화해줄 것으로 평가됐던 정 총리가 갑자기 ‘세종시 올인 총리’가 됐다. 이는 이명박 정부에도, 정 총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현실이다.

마지막으로 이 대통령에게 제대로 된 보고가 이뤄지고 있는 지에 대한 의문들도 생겨나고 있다. 여권 고위관계자는 “‘세종시 수정안을 밀어붙일 경우 어려운 상황에 처할 수 있다’고 소신있게 보고하는 참모가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별로 없다”고 전했다. 혹시 최근에도 ‘충청 여론이 괜찮아지고 있다’거나 ‘한나라당 상황이 나쁜 것은 아니다’라는 식의 긍정적인 보고만 올라가고 있는 것 아닌지 우려스럽다. 각종 여론조사나 기자들의 현장 취재에 따르면, 충청 여론이 좋아지고 있다는 징후들은 많지 않다. 청와대 참모들은 억울하겠지만, 정치권에서는 ‘이 대통령의 세종시 수정에 대한 생각이 확고하기 때문에, 대통령 생각에 맞춘 보고만 올라가고 있다’는 시선들이 많다.

요즘 청와대 관계자들의 세종시 결론은 대개 이런 내용이다. ‘수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그러나 국가 백년대계를 위해 시작한 일이다. 진정성을 가지고 노력하면 좋은 결론이 나지 않겠는가. 열심히 하고 있다. 상황이 그렇게 나쁜 것은 아니다.’ 정말 믿어도 되는 것일까.

정치부 남도영 차장 dy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