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산 트레킹… 순백의 눈꽃 밟고 순수한 초심 찾다

입력 2010-01-20 18:01


어느 해보다 춥고 잦은 폭설에 설산으로 변신한 지리산과 덕유산 등이 겨울 산행객들을 유혹하고 있다. 겨울산은 나목 아래 쌓여 다져진 눈을 밟으며 걷는 맛이 일품으로 눈꽃이나 상고대라도 피면 금상첨화. 겨울산으로 떠날 땐 아이젠, 스틱, 장갑, 모자 등 산행장비를 반드시 챙겨야 한다. 초보자도 쉽게 산행할 수 있는 겨울산으로 여행을 떠나본다.



◇곰배령(강원 인제)=곰이 배를 하늘로 향한 채 누워있는 형상의 곰배령은 해발 1100m에 위치한 광활한 평원.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한 장면을 연상하게 하는 곰배령 정상에 서면 설악산 대청봉도 동네 뒷산처럼 아담하게 보인다.

곰배령으로 가려면 하늘 아래 첫 동네로 불리는 설피마을을 통과해야 한다. 설피마을은 한 해의 반이 겨울인 동화 마을로 물푸레나무와 소가죽으로 만든 덧신인 설피(雪皮)를 신고 다닐 정도로 눈이 많이 내린다. 인제와 양양을 연결하는 조침령 터널에서 설피마을을 거쳐 진동삼거리까지는 약 6㎞.

눈꽃 트레킹의 들머리인 진동삼거리는 영동과 영서를 잇는 부보상 길의 중간지점으로 옛날에는 주막이 있었던 곳. 삼거리에서 10여 가구가 세상을 등지고 살아가는 강선마을까지 약 2㎞. 눈꽃나무가 터널을 이루고 두꺼운 얼음 속을 흐르는 계곡의 물소리가 산새소리처럼 청아하다.

곰배령과 점봉산 일대는 산림유전자원보호림으로 지난해 7월부터 진동삼거리∼강선마을∼곰배령 구간이 부분 개방됐다. 숲해설가나 지역주민 안내로 하루 50명까지만 탐방이 가능하다. 탐방을 하려면 입산을 원하는 전날까지 인제국유림관리소(033-463-8166)로 신청해야 한다.

◇노고단(전남 구례)=지리산은 동서 50㎞, 남북 32㎞, 둘레 320㎞로 3개 도와 5개 시군에 걸쳐있는 한국 최대의 산악군. 주봉인 천왕봉(1915m)을 중심으로 촛대봉 형제봉 토끼봉 반야봉 등 해발 1000m가 넘는 봉우리만 20개가 넘는다. 그 중에서도 산행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봉우리는 지리산의 얼굴로 불리는 노고단(1507m). 노고단 겨울 산행은 자동차로 오르는 성삼재에서 시작된다. 신라 화랑들이 심신을 수련하던 노고단에는 골조만 절반 정도 남은 시멘트 건물 한 채가 눈길을 끈다. 노고단대피소 조금 못 미쳐 왼쪽 숲 속에 위치한 건물 잔해는 1920년대에 외국인 선교사들이 세웠던 수양관으로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모두 파괴됐다.

산행객들의 휴식처인 노고단대피소에서 노고단 삼거리까지는 두 갈래 길. 왼쪽의 계단길이 지름길이지만 산과 강이 어우러진 진경산수화를 감상하려면 송신소를 에두르는 오른쪽 길을 선택해야 한다. 설산으로 변한 능선 너머로 펼쳐지는 구례의 들녘이 아스라하다.

피라미드처럼 쌓은 돌탑이 이국적인 노고단 삼거리에서 노고단 정상까지는 약 750m. 성삼재 휴게소에서 노고단 정상까지 30분∼1시간 정도 걸린다(국립공원관리공단 지리산남부사무소 061-783-9100).

◇덕유산(전북 무주)=덕유산은 무주리조트에서 곤돌라를 타고 편안하게 오를 수 있어 가족을 동반한 산행객에게 인기. 곤돌라에서 내려 정상인 향적봉(1614m)까지는 쉬엄쉬엄 걸어도 15분 안팎. 겨울 덕유산의 주인공은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을 산다는 주목으로 고사목 가지에 핀 눈꽃이나 상고대가 그림 같은 풍경을 그린다.

덕유산은 상고대가 가장 아름다운 산이다. 일곱 능선 너머 경남 거창 오두산에서 떠오르는 장쾌한 일출마저 눈보라에 묻혀 버린 이른 아침. 상고대와 눈꽃이 함께 핀 덕유산은 한 폭의 수묵화다. 서리꽃으로도 불리는 상고대는 구름이나 대기 중의 수증기가 나뭇가지에 얼어붙어 생긴 빙화(氷花).

상고대가 가장 멋스런 곳은 설천봉과 향적봉을 잇는 산행로. ‘눈 덮인 하늘 봉우리’라는 뜻의 설천봉에서 향적봉까지 나무계단을 따라 상고대와 눈꽃이 터널을 이룬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거미줄처럼 뻗은 나뭇가지에 핀 상고대는 하얀 산호를 닮았다.

봄부터 가을까지 온갖 야생화가 피고 지는 중봉은 겨울 덕유산의 하이라이트. 주목과 구상나무 고사목이 멋스런 철쭉 터널을 통과해 중봉 전망대에 서면 덕유평전 너머로 남덕유산과 지리산 등 백두대간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향적봉대피소 063-322-1614).

글·사진=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