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신의 깜짝 한수] 제6회 LG정유배 결승 2국 ● 이창호 9단 ○ 최명훈 8 단
입력 2010-01-20 18:20
밤이 긴 겨울이어서 그런지 하루하루가 성큼성큼 잘도 지나간다. 지난 주말엔 뭔가 좀 알차게 보내보자는 다짐으로, 비씨카드배 64강전을 찾았다. 이세돌 9단의 복귀 후 첫 대국이 그것에 속해 있다는 소식에, 오랜만에 그의 얼굴도 볼 겸 강자들의 기운도 받아볼 겸 해서 한국기원으로 갔다. 아뿔싸! 당연히 한국기원에서 두는 줄 알았더니 서울 소공동에 있는 웨스틴 조선 호텔에서 64강전을 한다고 한다. 다행히 나처럼 정확한 정보를 모르고 나타난 기사들 몇몇이 모여 TV와 인터넷을 통해 자연스레 검토가 벌어졌다.
봐야 할 판이 너무 많아 한 판으로 집중되지 못해 결국 수다판 중심으로 흐르고 있는데, 그럼에도 기사들은 본능적으로 어느 한 순간 집중이 모여지게 될 때가 있다. 점심을 먹고 따뜻한 온풍기가 돌아가고 슬슬 눈꺼풀이 무거워지며 슬며시 하품이 전달되고 있을 무렵 누군가 바둑알을 양손에 집더니 모양을 만들기 시작한다. 순간 나른함에서 깨어나 또 다시 한마디씩들 해댄다. “이거 유명한 바둑이잖아.” “와, 이 모양을 다 기억하고 있단 말이야?” “앗, 진신두(鎭神頭)다!”
필자 역시 이 맥을 알고는 있었지만 치명적으로 좋지 않은 기억력 덕분에 처음 본 것만 같다. 신기해서 꼬치꼬치 캐묻고는, 9년 전의 바둑이지만 기억을 새롭게 떠올리는 차원에서 소개해 보기로 한다. 이창호 9단과 최명훈 8단(당시)의 대국. 실전도의 흑1로 빠질 때부터 흑은 이 묘수를 보고 있었던 것 같다. (흑1로 백2로 두면 수상전이 빨라 쉽게 백을 잡을 수 있지만 백2로 흑1의 자리에 둬서 넘어가 좋지 않다) 백은 2,4로 나와 흑의 약점들을 노리며, 백10까지는 필연의 수순으로 끊겨진 흑은 a, b 둘 중 하나 축에 걸리게 되어 있다.
이 때! 웬만한 애기가 분이시라면 분명 이미 ‘그 수’를 떠올리며 호탕한 웃음소리를 내며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계실 것이다. 참고도의 흑1! 끊겨진 흑 양쪽의 축을 방비하는 묘수로 ‘진신두’라고 불리고 있다. (진신두에 대해선 아직 명확한 정의가 없다.) 이 수를 당한 백은 이 후의 수순을 못 읽었을 리 없지만 마음을 추스르는 시간으로 2∼11까지 두어보며, 흑1의 묘수의 빛을 확실하게 확인하고는, 81수라는 단명국으로 끝이 났다.
해가 바뀌고 결심이 자꾸만 흐려져 헤이해지는 마음을 다잡고자 온고지신(溫故知新)을 떠올리며 옛날 기보를 들춰보았다.
<프로4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