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금융에 가려… ‘희망홀씨’ 홀대
입력 2010-01-19 18:50
정부는 지난해 3월 14개 은행을 통해 연말까지 1조4000억원의 자금을 지원, 서민 24만명이 혜택을 볼 수 있도록 하겠다는 친서민 대책을 내놨다. 이른바 ‘희망홀씨’ 대출을 통해 자금난과 고금리 덫에 빠진 서민들의 재활을 지원하는 한편 은행의 사회공익적 기능 강화를 도모한다는 취지였다.
정부 발표 뒤 은행들이 관련 상품을 쏟아냈고 외국계 은행 한 곳도 대열에 동참했다. 국민은행 ‘KB행복드림론’, 신한은행 ‘신한희망대출’, 하나은행 ‘희망하나더하기대출’, 광주은행 ‘KJB희망드림대출’, 대구은행 ‘DGB희망홀씨대출’ 등이 출시됐다. 이에 고무된 정부는 6개월 뒤 대출자 40만명, 대출액 1조9100억원으로 목표를 늘려 잡았다.
그러나 ‘거창했던’ 시작과 달리 실적은 초라하다. 19일 금융감독원과 시중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15개 은행의 희망홀씨 대출 잔액은 1조3805억원으로 대출 목표인 1조9100억원의 72.3%에 그쳤다. 23만949명이 평균 598만원을 대출받은 셈이다.
그나마 특수은행인 농협중앙회(5194억원)와 정부투자 지분이 65%인 기업은행(2449억원), 공적자금이 투입된 우리은행(1805억원)의 대출 실적이 9448억원으로 전체의 3분의 2를 차지했다. 나머지 11개 은행의 성적표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은행 종합검사 때 서민대출 실적을 평가하겠다며 으름장을 놓은 정부의 눈치를 보느라 마지못해 시늉만 한 탓이다.
지난해 7826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한 외환은행은 45명에게 2억원을 대출해준 게 전부다. SC제일은행 등 일부 외국계 은행들은 아예 서민소액신용대출을 외면했다. 제주은행(6억원), 수협(12억원), 광주은행(59억원), 경남은행(76억원) 등도 대출실적이 100억원에도 못 미쳤다.
대출 목표를 2000억원으로 잡은 신한은행은 고작 425억원을 지원하는 데 그쳐 목표 달성률이 21.2%에 그쳤다. 하나은행의 대출 잔액은 692억원이지만 희망하나더하기 대출상품을 출시하기 전 소액신용대출 잔액이 591억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101억원 늘어난 것에 불과했다. 국내 최대 은행인 국민은행은 3만3789명에게 1515억원을 대출했다.
특히 소액신용대출 홀대는 미소금융사업이 본격화하면서 두드러지고 있다. 미소금융 출범 이후 정부의 관심이 미소금융에 쏠리다 보니 희망홀씨 대출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는 것. 실제로 희망홀씨 대출자는 지난해 9월 2일 10만명을 넘어선 뒤 불과 한 달여 만에 15만명을 돌파했으나 12월 들어서는 대출 실적 증가세가 크게 둔화됐다.
하지만 미소금융이 서민들의 창업지원에 초점을 맞췄다면 희망홀씨 대출은 당장 필요한 생활자금을 빌릴 수 있는 유일한 창구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전 영업점에 희망홀씨 대출을 독려하고 싶어도 이윤을 추구하는 은행의 입장에서 미소금융 사업과 희망홀씨 대출을 둘 다 확대하기는 어려운 것 아니냐”고 말했다.
황일송 기자 ils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