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아(物我)와 심수(心手)’ 展… 붓 끝에 세상의 본질을 담다
입력 2010-01-19 18:47
그린다는 것은 무엇인가. 전통적으로 동양화에서 그린다는 행위는 사물 그 자체보다는 대상에 투영된 나(我)를 그리는 것이고, 화가의 솜씨(手)는 사물을 제대로 옮겨 담기보다는 마음(心)을 나타내는 것을 말한다.
중국 남제시대의 화가였던 사혁은 저서 ‘고화품론’을 통해 회화에 필요한 6가지 화법, 즉 기운생동(氣韻生動) 골법용필(骨法用筆) 응물상형(應物象形) 수류부채(隨類賦彩) 경영위치(經營位置) 전이모사(轉移模寫)를 거론했다.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 갤러리에서 31일까지 열리는 ‘물아(物我)와 심수(心手)’ 전은 동양화의 6가지 화법 중 3가지(기운생동 골법용필 응물상형)를 키워드로 현대미술 속 ‘그린다’는 것의 의미를 살펴보는 기획전이다.
도시 풍경을 빛의 이미지로 그려내는 김성호, 안개 자욱한 숲 위로 쏟아지는 빛에 주목하는 도성욱, 꽃 등 정물을 화사하게 묘사하는 박일용, 토속적인 풍경을 옮겨내는 이원희, 자연 너머의 이미지를 포착하는 주태석 등의 그림은 직관을 통해 형상을 파악하는 ‘기운생동’의 차원에서 해석된다. 이들 작가의 그림은 구체적인 대상을 표현하는 듯 하지만 실제로는 보이는 대상 너머에 있는 본질적인 기운을 포착하려 한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강렬한 필선과 붓의 터치, 생명력과 속도감을 중시하는 작가들의 그림은 ‘골법용필’로 설명된다. 골법용필의 현대적인 의미는 운필의 힘으로 사물의 배후에 숨어있는, 보편적 추상성을 발견하는 것을 말한다. 두터운 선으로 얼굴을 강렬하게 표현하는 권순철, 일필휘지로 힘있게 선을 그리는 김호득, ‘축제’의 이미지를 추상적으로 나타내는 이두식, 대나무와 산 등을 목탄으로 섬세하게 표현하는 이재삼, ‘붓의 작가’ 이정웅 등의 작품이 이에 해당한다.
응물상형은 대상이 갖고 있는 모습을 정확하게 묘사하는 극사실주의 화풍을 의미한다. 주사위와 카지노 칩 등 현대문명의 이면을 드러내는 두민, 얼음 속 과일이나 채소 등으로 역경과 인내를 상징하는 박성민, 돌 또는 나무 조각 느낌의 박성열, 사과와 소나무를 각각 실제보다 더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윤병락과 장이규의 작품이 전시된다. 한국의 대표적인 구상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회화의 본질을 알아보고, 동양화법으로 서양화를 바라보는 시야를 넓힐 수 있는 전시다(02-720-1020).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