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이혜경] 태양을 삼켜버린 국장님!

입력 2010-01-19 18:04


우리 사무실에는 전국 각지의 아동복지시설에서 만들어진 소식지가 배달되어 온다. 시설에서는 반년이나 일년마다 한 번씩 소식지를 제작한다.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아이들과 떨어져 지낼 수밖에 없는 부모님들에게 아이들의 소식을 전하기도 하고, 여러 후원자들에게 아이들이 어떠한 도움으로 밝고 씩씩하게 자라고 있는지 알려주기도 한다.



나는 바쁘다는 핑계로 바로 챙겨 보지는 못하지만, 출장을 떠날 때는 아이들이 시설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해서 자리 한켠에 모아 두었던 소식지를 꺼내보곤 한다.

얼마 전 한 소식지에서 어느 선생님의 ‘아이들의 성장기록 보육일지’ 한 토막을 읽게 되었다. 그 시설의 사무국장님이 회를 잘못 먹어 장염으로 병원에 입원하고 계신 걸 한 아이가 어디서 듣고 한 이야기가 걸작이다.

“국장님이 해를 잘못 드셔서 목 수술을 했대”라고 하자 옆에서 듣고 있던 아이가 핀잔을 주었다. “해를 뜨거워서 어떻게 먹냐?” 그러니까 전 아이가 바로 반박한다. “바보, 그러니까 뜨거워서 수술을 한거지!”

그 아이들을 보살피고 있는 선생님은 어떻게 아이들이 태양을 먹을 수 있다는 발상을 할 수 있는지 자체가 놀라웠다고 한다. 그리고는 아이들의 동심에 빠져 잠깐 웃고 지나갔는데, 아이들 여럿은 그날 저녁 예배시간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하나님께 ‘국장님의 뜨거워진 목을 빨리 식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다고 한다.

글을 읽고 나서 문득 나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았다. 그때 우리는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았을까. 당시 어린 시절을 지배했던 가치는 무엇이었을까. 그러나 망각의 기제가 활발한 탓인지, 도무지 생각이 나질 않았다. 하긴 태양을 삼킨 아이디어도 나의 관점에서나 기발한 것이지, 그 아이들에게는 지극히 당연한 생각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이 지금 가지고 있는 이런 창의적인 생각들이 좀 더 빛을 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아이들이 앞으로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후 수많은 교육을 받고 교실에서 여러 교과목을 공부하면서 답을 찾아내는 방식을 익히고 난 뒤에도 말이다.

그러나 새로운 정보와 지식들을 받아들일수록, 이미 가지고 있는 창의적인 생각들이 꺾이고 마는 것 같다. 또 아이들이 학교에서 시험이라는 괴물과 힘겹게 싸우며 천편일률적으로 정형화되는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대신 태양을 정말 삼켜버릴 것 같은 장면을 연출하거나 그런 내용을 그릴 수 있어야 한다. 계절마다 바뀌는 산과 들, 바다를 직접 느끼며 확 트인 사고를 할 수 있으면, 나아가 그 젊은 가슴에 넓은 세상을 모두 담을 수 있는 미래가 열렸으면 좋겠다.



이혜경 한국아동복지협회 기획홍보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