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삼보대회 첫 메달 김광섭 “매트의 영광을 오직 그 분께”
입력 2010-01-19 18:05
지난해 11월 8일 그리스 테살로니키에서 열린 세계삼보선수권대회 68㎏급 동메달 결정전. 그의 왼쪽 발목은 벌겋게 부어 있었다. 직전에 끝난 준결승에서 상대 선수의 다리꺾기 기술에 인대 부상을 입고 들것에 실려 나왔다. 코치나 의료진은 기권을 권했지만 포기는 싫었다.
그는 기도했다. “이기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경기장에 설 수 있도록 함께해 주십시오.”
그리고 진통제를 맞고 경기에 나섰다. 상대는 세계선수권대회를 2연패한 강자 드미트리 바질레프(벨로루시)였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골리앗과 맞선 다윗처럼 그는 속으로 하나님을 찾았다.
‘선 수비, 후 공격’ 전략이 맞아떨어졌다. 종료 40초쯤 전 안아돌리기로 1점을 땄고, 당황하는 상대를 되치기해 4점을 보탰다. 5대 0 승리. 그는 그 자리에서 다시 하나님께 기도하며 영광을 돌렸다. 김광섭(29) 선수가 한국 삼보 사상 세계대회 첫 메달을 따는 순간이다.
김 선수는 유도 국가대표 선수였다.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 유도 66㎏급에서 동메달을 땄다. 아시안게임을 한달 정도 앞두고 그는 연습 도중 무릎 연골이 파열됐었다. 대표팀에서 선수 교체 얘기가 흘러나왔다. 병원에서도 “경기는 불가능하다”고 진단했다.
기댈 곳은 기도밖에 없었다. 그는 온 가족과 함께 출석하는 서울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를 찾아갔다. 불쑥 목발을 짚고 온 그를 본 김 목사는 “참 안타까운 일”이라며 안수기도를 해줬다. 김 선수는 이후 한 스포츠재활 병원에서 치료와 재활을 받은 뒤 아시안게임에 출전, 기어이 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 경기, 한 경기 끊임없이 기도했다고 한다. “영적으로 무장하고 경기에 나서는 것과 그렇지 않았을 때의 차이를 누구보다 잘 안다”고 그는 말했다.
이듬해 김 선수는 부상 악화로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올림픽 메달의 꿈도 접었다. 유도 자체를 즐겼고, 부상 역시 하나님의 뜻이라 여겼기 때문에 의연하게 은퇴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고 한다. 이후 김 선수는 아웃소싱 전문업체 ㈜코이디씨를 설립해 사업을 시작했고, 모교인 한양대 글로벌경영전문대학원에도 진학했다.
그러나 그는 지난해 봄, 매트 위로 돌아왔다. 유도가 아닌 삼보 선수로 돌아왔다. 러시아 전통 씨름인 삼보는 격투기 황제 ‘효도르’의 무술로 소개되면서 국내에서도 관심이 조금씩 늘고 있다.
김 선수가 삼보를 택한 것은 대한삼보연맹 부회장인 아버지 김영철(고려진생 대표)씨의 권유가 컸다. 아버지 역시 유도 선수였지만 대학 시절 부상으로 조기 은퇴했다. 김 선수는 정식 입문 3개월 만인 지난해 8월 러시아 대통령배 단체전에 첫 출전했다. 비록 벨로루시 선수에게 5대 6으로 패했지만 ‘조금만 더 하면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한다. 그리고 석 달 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값진 메달을 땄다.
김 선수는 요즘 다시 훈련에 집중하고 있다. 다음달 벨로루시 국제대회, 5월 아시아선수권대회, 9월 월드삼보챔피언십 등이 예정돼 있다. 벌여놓은 사업도 신경 써야 하고, 휴학 중인 대학원도 복학할 계획이다. 그는 이 바쁜 일상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유도나 삼보, 사업 등 제가 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주어진 달란트로 최선을 다하면서 주위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야말로 크리스천이 해야 할 일 아닐까요?”
19일 서울 역삼동 삼보연맹 사무실에서의 인터뷰가 끝난 뒤 김 선수는 곧바로 한양대 체육관으로 향했다. “마음이 각박해지거나 투기적으로 되지 않도록, 항상 긍정적으로 도전할 수 있도록 오늘도 기도한다”고 그는 말했다.
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