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모니’ 주연 김윤진 “뻔∼한 최루영화? 밝은 캐릭터에 끌렸어요”
입력 2010-01-19 17:37
김윤진(37)은 즐거워보였다. 계속되는 영화 홍보 활동에 지칠 법도 한데, 그는 질문 하나도 소홀히 흘리지 않고 시종일관 웃는 얼굴로 성의 있게 답했다.
“영화 촬영 과정도 재미있었고, 무엇보다 시사회 후 영화 반응이 좋은 걸 보니 정말 즐겁네요. ‘하모니’ 홍보 작업을 마무리하기 위해서 ‘로스트’ 촬영분도 좀 포기했는 걸요.”
김윤진이 국내에서 3년 만에 출연한 ‘하모니’는 여자교도소 내 수감자들이 합창단을 만드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그는 교도소에서 아들을 낳아 기르지만 법에 따라 18개월 후면 입양을 보내야만 하는 ‘정혜(김윤진)’역을 맡았다. 열악한 환경에서 합창단을 만드는 과정과 수감자들의 구구절절한 사연이 버무려지며 영화는 곳곳에서 눈물 폭탄을 터트린다. 영화만 놓고 보면 그간 이지적이고 강인한 여성 역할을 주로 하던 그의 이미지와는 다소 맞지 않는 셈.
“사실 대본을 보기 전 스토리만 들었을 때는 진부한 영화가 될까봐 걱정했어요. 교도소에, 입양에, 뻔한 최루성 영화가 될 것 같았거든요. 하지만 감독님하고 얘기하면서 밝고 활달한 성격의 캐릭터에 끌리게 됐어요.”
실제 ‘하모니’는 지독한 최루 요소에도 불구하고, 김윤진의 약간 오버스러운 연기나 함께 출연하는 정수영, 박준면 등의 코믹 연기, 그리고 ‘정혜’의 아들 ‘민우’로 나오는 14개월짜리 이태경 군의 깜찍한 표정 등으로 밝고 따뜻한 분위기를 유지한다.
“아이랑 호흡을 맞추다 보니 어느 작업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어요. 모든 배우와 스태프가 아이 상태에 따라 움직였죠. 특히 저는 엄마 역할이다 보니 친근감을 높이기 위해 시간 날 때마다 아기 방에 가서 놀았어요. 아침마다 유기농 과자, 과일을 준비해 가 먹이면서 환심을 샀죠.(웃음) 서로 ‘사랑해’하며 안는 연습도 많이 했어요.”
영화에서 김윤진과 태경 군은 환상의 호흡을 자랑한다. ‘반했다’고 느낄 정도로 아이와 정이 깊이 들었다는데, 자식 욕심은 안 생기는지 물었다.
“조카들을 보면 결혼한 언니랑 동생이 부러워요. 여자로서 저도 아이를 낳고 싶고, 또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일은 어쩌나’하는 고민이 들죠. 현대 여성이라면 누구나 고민하는 부분이겠지만 ‘결혼하고 출산하면 공백기가 최소 3년인데, 돌아오면 내 자리가 있을까’하는 두려움이 있어요.”
그는 현재 미국의 인기드라마 ‘로스트’ 마지막 시즌을 촬영 중이다. 6년 반 동안 촬영해온 ‘로스트’가 시즌 6을 마지막으로 막을 내리면서 그도 거처를 하와이에서 로스앤젤레스로 옮길 예정이다. 본격적인 할리우드 영화에 도전하기 위해서다.
“배우한테는 계획이라는 게 무의미하죠. 먼저 캐스팅이 돼야 하니까요. 오디션을 보고 떨어지고 하는 과정이 있겠지만 그래도 계속 도전해야죠. 계획은 없어도 꿈은 놓지 않고 살고 싶어요.”
한국과 미국 두 나라에서 활동을 하는 만큼 주위 동료로부터 부러움도 많이 사지만, 그만큼 책임감도 무겁다.
“‘로스트’를 찍으면서 한국 문화가 잘못 묘사되거나, 한글 표기가 틀린 건 제가 일일이 고쳤어요. 아예 스태프들이 일을 다시 해야 되는 경우도 생겨서 미안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한국에 관해 잘못된 건 그냥 넘어갈 수 없었죠. 제가 잘해야 더 많은 우리 후배들에게 기회가 생길 수 있다는 생각도 하고요.”
꿈과 인생, 연기와 교감(交感)에 대해 눈을 반짝거리며 말하는 그가 세계를 상대로 다음엔 어떤 행보를 펼칠지 궁금해졌다.
양지선 기자 dybs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