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아트센터 ‘공짜표는 없다’ 10년… 돈 내도 아깝지 않은 공연으로 승부

입력 2010-01-19 22:39


#공짜는 없다

1996년부터 LG아트센터 개관 준비에 참여한 김의준 대표는 LG아트센터 문을 열면서 초대권을 없앤다고 안팎으로 선언했다. 그는 LG아트센터로 옮기기 전까지 10년이 넘게 예술의전당에 몸을 담아왔다. 공연계에 정통한 그로서는 초대권의 나쁜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셈이다.

내부적인 사정도 초대권을 없앨 수밖에 없는 여건이었다. 당시 LG(GS와 LG가 분리하기 전)그룹은 계열사 임원만 1000명이 넘었다. LG아트센터 공연장 객석 수는 1103석이다. 공연할 때마다 임원 한 명에게 초대권을 보내도 일반 관객에 팔 표가 거의 없어지는 것이다. 김 대표는 “초대권을 드릴 수 없다”고 분명히 선을 그었다. 다행히 그룹 오너부터 힘을 실어줬다. 구본무 회장은 공연장에 나올 때마다 직접 표를 구매해 모범을 보였다. 구 회장보다 공연장 출입이 잦은 부인도 반드시 직접 와서 표를 샀다. 이렇다보니 다른 임직원들은 아무런 불만을 표할 수 없었다.

하지만 공연계에서는 “설마, 정말?” 하며 믿지 않았다. 초대권은 수십 년 동안 공연계에 공공연한 관습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LG아트센터는 흔들리지 않았다. 어느 날은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고위 정치인이 LG아트센터에 전화를 했다. 비서를 통해 표를 부탁했는데 들어주지 않자 직접 수화기를 든 것이다.

“나 ○○○인데 표 좀 부탁합시다.” 그는 맡겨놓은 표를 찾는다는 투로 말했지만 담당직원은 담담하게 말했다. “저희는 초대권이 없습니다. 직접 구매하셔야 합니다.” 이윽고 수화기 너머에서는 격양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내가 누군지 알아? 문 닫고 싶어!” 직원은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죄송하다”라며 전화를 끊었다.

평론가나 직접 출연하는 배우도 마찬가지다. 특히 LG아트센터는 국내 초연 프로그램이 많아서 평론가들이 관심을 갖는 작품이 많았다. 평론가 입장에서는 공연을 보고 좋게 평가해주면 LG아트센터에게도 좋지 않느냐는 논리로 초대권을 요구했다. 하지만 대답은 마찬가지로 “안 된다”였다. 한 평론가는 “이런 식으로 평론가들 홀대하면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다”고 협박을 했지만 결국 자기 돈을 내고 공연을 봐야 했다. 어디가나 스타대접을 받는 여배우 A양도 자신에게 초대권을 안 준다며 항의 전화를 했다가 소득 없이 전화를 끊기도 했다.

LG아트센터는 다른 단체와 공동주최를 할 경우에도 그 단체에 초대권을 주지 않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협찬의 경우에도 보통 협찬 금액의 70∼80%는 표로 돌려받는 게 관례인데 LG아트센터는 10%만 표로 제공한다. 그것도 공짜가 아니라 LG아트센터가 받게 될 수익금으로 직접 표를 사서 주는 것이다. LG아트센터는 저소득층에 관람기회를 제공할 때도 초대권을 남발하지 않고 자체 예산으로 직접 표를 사서 제공한다.

홍보담당 김지인씨는 “간혹 너무 융통성 없다는 소리를 듣기도 하는 게 사실”이라면서도 “원칙을 세우는 건 어렵지만 그걸 허무는 건 한 순간이기 때문에 철저하게 초대권이 없다는 원칙을 지키려고 한다”고 말했다.

#다른 것에 눈을 돌리다

초대권을 없앤 LG아트센터가 처음부터 승승장구 한 것은 아니었다. 개관 초기에는 100석 정도만 채우고 공연을 하기 일쑤였다. 이런 상황에서 보통 “자리라도 채우자”는 심장에서 초대권을 남발하지만 LG아트센터는 유혹을 참아냈다.

대신 돈을 주고 올 만큼 매력적인 프로그램을 만드는데 힘을 쏟았다. 영국의 대표적인 현대 무용 안무가 매튜 본을 비롯해 러시아 발레 안무가 보리스 에이프만, 연극 연출가 레프 도진 등의 작품이 LG아트센터를 통해 국내에 처음 선보였다. 유럽과 미국에 편중된 클래식 공연의 외연을 아프리카와 동유럽권으로 넓힌 것도 LG아트센터의 성과로 꼽힌다. 1년치 공연을 한꺼번에 기획, 홍보, 마케팅 하는 시즌제를 국내에 처음 도입한 것도 LG아트센터였다. 외국에 나가지 않아도 해외 유수의 공연을 국내에서 볼 수 있게 되자 관객들이 모여들었다. 첫해 56.2%였던 평균 매표율은 2005년 90.7%에 달하는 등 매년 70∼80%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초대권이 없으니 표 값도 자연히 안정됐다. LG아트센터 공연 중 지금까지 최고가는 10만원이었다. 물가상승률 등을 고려해 올해 12만원까지 올렸지만 20∼30만원 안팎인 다른 공연장 수준에 비하면 많이 낮은 편이다.

이현정 공연기획팀장은 “아직 한국 관객은 유럽이나 미국 쪽 아티스트의 공연을 선호하는데 앞으로 동남아시아, 서남아시아 등 아시아권 작품을 소개하고 싶다“면서 ”또 다른 단체나 예술가와 협업하는 작품도 늘려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