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숭고한 人類愛 아이티서 꽃피다
입력 2010-01-18 18:41
구호물품을 실은 헬리콥터가 지상에 내려오니 주민들이 개미떼처럼 모여든다. 헬기의 프로펠러가 일으키는 바람에도 아랑곳없이 식료품을 차지하기 위해 필사적인 다툼을 벌인다. 미국 CNN은 덤프트럭에서 시신들이 우르르 쏟아져 구덩이에 묻히는 장면을 방영했다. 거리의 시신은 공시(公示)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무연고 상태로 방치돼 있다. 아이티 내무장관은 사망자가 20만 명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같은 참혹한 현장이 인류애의 시험장이 되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구호의 손길이 모여들고 있는 것이다. 가슴 찡한 사연도 잇달아 나오고 있다. 68시간 만에 16개월 된 아기가 잿더미에서 구출됐으며, 43세 임산부도 70시간 사투 끝에 생환했다. 한국의 구호팀도 현지에 도착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각국의 구호 형태도 파격적이다. 물자를 지원하거나 방역팀·구호단·복구팀을 파견하는 예전의 방식에서 벗어나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접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큰 나라답게 치안을 떠맡았다. 프랑스는 부채 400만 유로를 탕감했고, 캐나다는 이민의 문을 활짝 열었다. 브라질도 대규모 재건활동에 나섰으며 세네갈은 비옥한 땅에 아이티 주민을 받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나라별로 입장은 조금씩 다르다. 미국은 쿠바를 둘러싼 카리브해 패권 전략이 있고, 프랑스는 옛 식민종주국이다. 브라질은 중남미 맹주의 지위를 드러내고, 캐나다는 수만명 아이티 이민자를 배려해야 한다. 세네갈은 같은 뿌리를 가진 형제국이다.
이에 비해 한국은 순수한 인류애로 다가서고 있다. 사실 아이티라는 나라는 우리와 멀다. 지리적으로 멀거니와 정치경제적 이해관계도 약하다. 인종적 문화적 공통점도 없고 인적 교류도 뜸한 편이다. 그럼에도 아이티를 돕는 민·관의 손길은 어느 나라보다 뜨겁다. 특히 교계를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는 도움의 손길은 숭고한 물결을 이루고 있다. 인도주의를 실천하는 현지 선교사들의 활동도 눈부시다. 고통받는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는 한국교회와 한국인의 헌신이 자랑스럽고도 뿌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