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 지진 대참사] “물도…식량도… 희망도 없다” 꼬리문 엑소더스
입력 2010-01-18 00:04
물가 천정부지·구호 지연… 폭동 우려 커져
강진이 할퀴고 간 아이티의 수도 포르토프랭스에선 지금 ‘엑소더스(탈출)’가 진행되고 있다.
물과 식량 부족, 약탈과 치안 부재, 여진의 공포 속에 지옥 같은 포르토프랭스를 탈출하려는 주민들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유엔은 아이티에 대한 국제사회 공조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안전보장이사회를 18일 소집한다.
◇“먹을 것도, 희망도 없다”=포르토프랭스 시민들의 최대 고통은 식량난과 식수난이다. 손바닥만한 크기의 비닐봉지에 담긴 물 한 봉지가 1굴드(약 30원)에서 지진 발생 이후 2굴드로 오르는 등 대부분 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고 AP통신 등이 보도했다.
도심 곳곳에선 약탈자들이 떼를 지어 몰려다니고 있다. 총 칼 망치 돌 등 모든 도구를 들고 거리를 누비고 있다. 도미니카공화국 자원 봉사요원 2명은 구호 물품을 나눠주다 총격을 받아 부상까지 당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벌써 유행성 설사병이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며 “1주일 안에 면역력이 떨어지는 유아와 부상자 등이 치명적인 상황을 맞게 될 것”이라고 전염병 대재앙을 경고했다.
그런 탓에 포르토프랭스 시민들은 다른 지역 친지들을 찾아 필사적인 탈출을 감행하고 있다. 연료 가격이 폭등해 차량을 포기하고, 짐을 짊어지고 걸어 피난길에 오른 경우가 대부분이다.
엑소더스 행렬은 미국으로도 향할 조짐이다. 아이티 판 대규모 ‘보트 피플’이 될 수 있다. 미국 해안경비대 마릴린 파자도 대변인은 “아이티인 불법 입국자들이 급속히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고 16일 밝혔다.
◇치안 공백 속 폭동 우려=구호물자는 속속 아이티를 향하고 있지만 주민들의 목마름을 해소하기엔 역부족이다. 곳곳에서 약탈이 진행되면서 배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티 경찰 9000명 가운데 절반 정도만 치안유지 업무에 참여하고 있다. 15일에는 포르토프랭스 교도소 재소자 4000명이 탈주하는 사태가 발생, 폭동마저 우려되는 상황이다. 유엔은 평화유지군과 경찰 병력 등 5000여명을 포르토프랭스에 집중 배치해 치안 확보에 나섰다.
이런 와중에 2차 대지진 경고마저 나왔다. 미국 텍사스대학 폴 맨 교수는 “이번 지진을 일으킨 단층과 가까운 단층들에 가해지는 압력이 이번 지진으로 커졌다”며 “비슷한 규모의 지진이 또 발생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시기는 언제가 될지 모른다고 덧붙였다.
한편 미국의 휴대전화 이용자들은 문자메시지 기부로 1000만 달러를 모았다. 워싱턴 비영리 기부단체 ‘모바일 기부재단(MGF)’의 짐 매니스 대표는 아이티 피해를 돕기 위한 기부 문자메시지가 초당 1000개씩 몰려들어 1000만 달러를 넘어섰다고 밝혔다. 단일 사건 성금으로는 최고 기록이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UNOCHA)에 따르면 현재 43개국에서 나온 수색·구조팀 1739명이 아이티에서 구조 활동 중에 있다.
김영석 기자 y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