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 반성없는 사법부] ‘민족일보 사건’ 조용수 사장 동생 조용준씨

입력 2010-01-17 18:22


(하) 억울함 풀지못한 피해자 유족들

“죄인 아닌 죄인으로 50년 죽기 전 소원은 국가 사죄”

“민족일보 사건은 체포부터 재판까지 모든 것이 엉터리였습니다. 47년 만의 무죄 판결로 그동안 쌓였던 분의 절반이 풀린 것은 다행이지만 아직 국가로부터 손해배상은 받지 못했습니다.”

조용준(76)씨는 1961년 민족일보 사건으로 사형을 당한 조용수(당시 31세) 사장의 친동생이다. 17일 서울 서초동에서 기자와 만난 조씨는 “국가가 사죄하는 걸 보는 게 죽기 전 마지막 소원”이라고 말했다.

조 사장은 61년 5·16 쿠데타가 일어난 지 이틀 만에 회사 직원들과 함께 영문도 모른 채 군부에 체포됐다. 당시 민족일보 기획실장이던 조용준씨는 몸살로 늦게 출근해 체포되지 않았다. 군부는 민족일보가 창간 자금을 북한에서 들여왔다며 민족일보 간부들을 혁명 재판에 회부했다. 61년 10월 31일 혁명재판소는 조 사장에게 사형을 선고했고 두 달 뒤 형을 집행했다.

47년이 흐른 2008년 1월 16일.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 사건은 재심을 통해 무죄 판결을 받았다.

조씨는 “당시 재판부가 혐의를 인정했던 내용이 재심에서 하나같이 다 뒤집혔다”며 “민족일보 사건은 어떤 범죄 요건도 제시하지 못하면서 범죄자로 몰아 처벌한 사건”이라고 말했다.

조씨는 당시 재판을 이렇게 표현했다. “피고인들이 길게 말하면 판사들이 말을 막았어요. 검찰이 심문하는 내용에 대해 ‘모른다. 안했다’고만 대답할 뿐이었죠.” 조씨는 당시 군인들이 법정 경호를 섰고 기자들도 재판에는 들어오지 못하는 등 분위기가 살벌했다고 전했다.

조씨는 당시 다행히 혐의를 벗었지만 죄인 아닌 죄인으로 반백년을 살아야 했다. 간첩 가족이라는 누명을 쓴 탓에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지 못했다. 그는 “친척들까지 우리를 멀리했고, 모든 사회 활동에 제약을 받았다”고 회상했다.

재심까지는 우여곡절도 많았다. 70년대부터 재심을 받기 위해 노력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던 조씨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재심 권고 결정 덕분에 가까스로 재심을 받게 됐다.

조씨를 비롯한 민족일보 사건 유족과 피해자 등 10명은 재심 결과를 토대로 지난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법원으로부터 ‘국가는 총 99억여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국가가 항소한 탓에 이 사건은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조씨는 “백배사죄를 해도 시원찮은데 항소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형의 목숨을 앗아가고 가족들에게 평생 고통을 안겨준 행위는 돈으로도 보상받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임성수 기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