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조교 사건’ 성희롱도 소송 대상… ‘민사소송 60년사’로 본 사회상

입력 2010-01-17 18:58

“공중전화가 동전 삼켜” 5원 소송

1993년 일어난 ‘서울대 우 조교 성희롱 사건’은 성희롱으로 소송을 당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많은 남성들에게 각인시켜준 사건이었다. 당시 서울대의 한 교수가 여성 조교에게 각종 실험기구와 조작 방법을 알려주는 과정에서 신체의 일부를 건드리고 연구실로 불러 몸매를 감상하는 듯한 태도를 보인 것이 문제였다.

당시 법원은 “가해자의 행위는 사회 통념상 일상생활에서 허용되는 호의적인 행위라기보다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 사건은 성폭력뿐만 아니라 성희롱도 사법적 판단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후 성희롱 가해자 징계를 의무화한 ‘남녀고용평등법’이 개정됐다. 또 공공기관을 포함한 사업체에 성희롱 방지의무 교육을 규정한 ‘남녀차별금지 및 구제에 관한 법률’도 제정됐다.

대법원이 최근 발간한 ‘역사속의 사법부’ 민사재판편을 살펴보면 우 조교 사건뿐 아니라 당시 사회상을 반영하는 판결들이 적지 않다.

공중전화가 돈만 삼키고 먹통이 된 것을 계기로 소송을 제기한 일도 있었다. 한 시민이 70년 5원짜리 동전을 넣고 공중전화를 사용하려 했으나 전화기가 동전만 삼키자 국가를 상대로 5원을 내놓으라며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결과는 원고 승소였다. 요즘이야 모든 국민이 휴대전화를 필수품으로 갖고 있지만 당시에는 공중전화조차 드문 상황에서 소송 결과를 놓고 일반의 관심이 쏠렸었다.

71년에는 무장공비와 무려 15분간 싸우다 공비가 발사한 총에 맞아 숨진 한 시민의 유가족에게 국가가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이 시민이 서울 서대문경찰서 홍제동파출소에 세 차례나 무장공비 출현 사실을 신고했으나 경찰이 곧바로 출동하지 않아 시민의 사망에 일부 책임이 있다는 판결이었다.

이제훈 기자 parti98@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