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집들이’… 25년 노숙생활 청산하고 아들과 함께 임대주택에 입주한 정근철씨

입력 2010-01-17 18:55


중2 자퇴 후 교도소까지… 지원센터 도움으로 자활 꿈

지난 15일 오후 7시, 서울 북가좌동 주택가 좁은 골목에 있는 5층짜리 다가구주택 201호. 세상에 태어나 처음 집들이를 한다는 정근철(38)씨 집이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런데 찾아 온 손님들의 면면이 독특하다. 말쑥한 차림새는 하나도 없고 모두들 꼬질꼬질한 모습에 머리와 수염도 덥수룩하다. 서울역 주변 쪽방에서 지내는 정씨의 노숙 시절 동료들이다.

“어따메 좋은 거. 어쭈고 마련했디야?” 저녁 식사로 자장면 한 그릇을 후딱 먹어치운 정태(가명·47)씨가 부러운 듯 물었다. 머뭇거리던 정씨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며 유년 시절 이야기부터 풀어놨다.

정씨는 1972년 서울 남대문 집창촌에서 태어났다. 중학교 2학년 때 자퇴한 뒤로는 줄곧 서울역에서 지냈다. 그때부터 시작한 거리 생활이 햇수로 25년이다.

어린 시절부터 거리로 내몰린 그는 막노동과 배달을 하며 근근이 생활을 이어갔다. 벌이는 항상 부족했고 돈을 모으는 법도 배운 적이 없었다. 여러 번 사기를 당하면서 좌절도 거듭했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서울역을 벗어나지 못했다.

세상이 모두 자신을 외면하는 것 같아 독해질 수밖에 없었다. 조그마한 시비에도 싸움을 일삼았고 결국 17세 되던 해 교도소까지 가게 됐다. 폭력 전과만 40개가 넘는다.

거리 생활과 수감 생활을 번갈아 하면서 몸과 마음은 지칠 대로 지쳤고 성격은 비뚤어졌다. 시름을 잊기 위해 한잔 두잔 마시던 술이 중독 수준까지 이르렀다. 분을 참지 못하는 성격 역시 해가 갈수록 심해졌다. 서울역 주변에서 알아주는 왈패가 됐다.

“나쁜 짓 많이 했어요. 같이 노숙하는 사람들도 저한테 손가락질을 할 정도였어요. 저를 도와주려는 사회복지사들과 주먹다짐도 했죠.”

그런 그에게 다가간 사람이 복지단체인 ‘노숙인 다시서기지원센터’ 이형운 팀장이다. 이 팀장이 절망에 빠진 정씨에게 심어준 희망은 바로 가족이었다.

정씨는 거리에서 만난 여자와 결혼해 아들 바다(가명·11)를 낳았다. 하지만 몇 년 후 이혼했고 바다는 고아원에 맡겨졌다. 정씨는 지난해 6월 이 팀장과 상담을 하면서 아들과 함께 살고 싶다는 마음을 고백했다. 가정을 이루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고 술을 끊고 정신과 치료도 받기 시작했다.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기 위해 운전면허도 땄다. 정씨는 “저는 어떻게 돼도 상관없지만 아들만큼은 제가 받은 고통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이 팀장은 정씨에게 특별자활근로를 제안했다. 사회복지사를 도와 노숙인의 상태를 확인하고 차와 커피를 나눠주는 일이다. 정씨는 그렇게 번 월급 39만원을 저축해 다가구 매입임대주택에 들어가기 위한 보증금 100만원을 마련했다.

정씨는 현재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다. 자활근로 수입으로는 생활을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신지체 3급인 아들을 혼자 둘 수 없어 걱정이다. 무슨 대책이라도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덤덤히 말한다.

“지난달 23일 아들과 함께 이 집에 이사 왔을 때를 잊을 수 없습니다. 다음달에는 친동생도 불러들여 같이 살기로 했어요. 저 같은 사람에게 이런 행운이 생길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아들과 함께 살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찾아 해야죠.”

전웅빈 기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