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의 희망,强小기업] (31) 아이레보
입력 2010-01-17 18:39
디지털 도어록 열풍 일으킨 창의성… 복제 불가능한 플로팅 아이디 기술 고안
‘게이트맨’ 시리즈로 디지털 도어록을 대중화시킨 아이레보 서울 가산동 본사 사옥 벽에는 낙서가 가득하다. 아이레보 임직원이 2003년 사옥 마련 기념행사에서 사옥 마련 기쁨을 낙서로 남기면서 낙서벽이 만들어졌다.
기쁨의 낙서는 하재홍(45) 사장 집무실에도 있다. 하 사장은 사무실 한켠에 체 게바라 사진을 놓고 벽에다 ‘삶의 모범이자 전형’이라고 썼다. 쿠바 혁명을 이끌었던 체 게바라가 한국에서 디지털 도어록을 생산하는 회사 사장의 삶의 모범이자 전형인 이유가 궁금해졌다. ‘체 게바라는 자신의 심장을 따랐다’라는 엉뚱한 답변을 했다. 즉 체 게바라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행동한 인물로, 자신도 그런 삶을 살며 기업을 일구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대우전자 연구원으로 일하던 하 사장은 늘 창의적인 것을 갈구하던 자신의 심장을 따라 1997년 회사를 나와 파아란테크를 설립했다. 2000년 아이레보로 사명을 바꿨다. 회사 설립 당시 경리직원 1명과 영업사원 1명이었던 회사는 지난해 직원 수 106명, 매출액 460억원, 디지털 도어록 국내 점유율 45%의 회사로 성장했다. 아이레보가 이처럼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발상의 전환. 기존 아날로그 방식의 자물쇠 시스템을 디지털로 전환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대우전자 연구원으로 있을 때 복제 열쇠를 이용해 서울 강남의 목욕탕을 돌며 훔친 5억원으로 세 자녀 유학까지 보냈다가 경찰에 잡힌 50대 여성 기사를 읽었습니다. 그때 열 때마다 암호가 바뀌는 자물쇠를 만들면 아무리 열쇠를 복제해도 소용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죠.”
하 사장은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사용할 때마다 천문학적 조합이 발생해 복제가 불가능한 플로팅 아이디(Floating ID) 기술을 고안해 1997년 특허를 냈다. 기술은 창의적이었지만 제품화 과정은 험난했다. 디지털 도어록이라는 개념이 전무했던 당시 첫 출시작 ‘게이트맨1’은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했다.
고심을 거듭하던 하 사장은 회사 경영을 부사장에게 맡기고 제품 연구에 몰두했다. 6개월 넘게 제품 기획부터 생산까지 직접 지휘했다. 이렇게 해서 2001년 출시된 ‘게이트맨2’는 서울 강남 지역을 중심으로 폭발적인 반응을 몰고 왔다. 자동 잠금, 슬라이딩 커버, 작동할 때 켜지는 푸르스름한 유리발광다이오드(LED). 지금은 기본이 된 디자인과 기능을 게이트맨2에 적용했다.
“첫 번째 게이트맨이 기술 과시적인 엔지니어적 마인드였다면 두 번째 제품은 철저하게 소비자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면서 소비자 마인드로 나갔습니다.”
디지털 도어록 바람이 불면서 매출도 급신장했다. 출시 첫해 69억원의 매출을 기록한 후 2002년 209억원, 2003년 361억원, 2004년 407억원, 2005년 456억원으로 성장에 가속이 붙었다. 2001년 중국 진출을 시작으로 해외 시장 공략도 본격화했다.
하지만 시련은 예기치 못한 곳에서 찾아왔다. 2006년 고압의 전기충격기로 디지털 도어록에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는 언론 보도가 이어지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개인적으로 억울한 부분이 있었지만 디지털 도어록이라는 제품 특성상 안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고객의 마음을 그때 한 번 더 뼈저리게 느끼게 됐습니다.”
하 사장은 회사의 존폐뿐 아니라 디지털 도어록 산업의 존폐가 걸린 상황에서 해명하면서 피하기보다 정면 돌파를 통해 해결책을 모색했다. 희박한 확률이긴 하지만 제품의 오류를 깨끗이 인정하고 요청이 들어오는 모든 제품에 대해 무료로 업그레이드를 해줬다. 또 업계의 신뢰를 높이기 위해 다른 업체를 일일이 찾아 설득한 후 한국 디지털 도어록 제조사 협회(KDMA)를 설립해 자체 기준을 강화해 나갔다.
이러한 신뢰 확보와 제품에 대한 기술 개발을 통해 2006년부터 내리 3년간 마이너스를 기록했던 영업이익이 지난해 29억원 흑자로 돌아섰다. 2012년까지 매출 1000억원과 현재 10%인 해외 비중을 50%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하 사장은 현재 포화 상태에 가까운 국내 시장을 벗어나 주택용 디지털 도어록이 보편화되지 않은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우리 목표는 단순합니다. 가정용 디지털 도어록은 우리가 대중화시킨 분야니까 최소한 애플 정도 되는 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게이트맨 하면 세계인이 바로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그런 기업으로 성장하는 게 목표입니다.”
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