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 세계문학선집 9권 출간… 9개 언어권 숨어있던 ‘명단편’ 소개
입력 2010-01-17 17:51
국내서 40여년 만에 나온 세계단편선집… 근현대문학 대표작가 102명의 114편
창비가 9권으로 된 세계문학선집을 내놓았다. 지난해부터 국내 출판계에 불고 있는 세계문학전집 출간 붐에 창비도 가세한 게 아닌가 했더니 그게 아니다.
‘창비세계문학’은 장편 중심으로 쏟아지고 있는 최근의 세계문학전집과 달리 세계 각국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단편을 묶은 것이다. 단편은 압축적인 구성과 치밀하고 간결한 문체, 예술적 아름다움 추구 등이 특징인 장르다. 1960년대 만해도 신구문화사가 ‘세계전후문제작품집’이란 단편 선집을 출간했지만 이후로는 국내 출판계에서 세계단편문학선집은 맥이 끊기다시피 했다. 국내 출판계에서 세계 주요 작가들을 아우르는 단편선집이 발간된 것은 40여년만이다.
‘창비세계문학’엔 19∼20세기 초중반에 이르는 세계 근현대문학 100년을 대표하는 작가 102명의 단편 114편이 수록돼 있다. 영국 미국 독일 스페인·라틴아메리카 프랑스 중국 일본 폴란드 러시아 등 9개 언어권의 작품을 각각 한권으로 묶었다. 몇몇 특정 국가와 언어권에 편중된 작품 소개에서 벗어나 다양한 언어권을 아우르려는 시도를 한 것으로 평가된다.
영국편은 찰스 디킨즈부터 2007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도리스 레싱까지 8명의 작품 11편을 실었다. 토머스 하디, 버지니아 울프, D.H. 로렌스 등 근현대문학 100년을 대표하는 거장들이 망라돼 있다. 영국 제국주의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정신을 담은 조지프 콘래드의 ‘진보의 전진기지’ 등 수록작들은 영국의 사회 변화상을 반영하고 있다. 아울러 계급 갈등 및 인종 차별, 여성 문제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한 작가의 통찰이 담겨 있어 영국사회와 영국문학의 흐름을 살펴볼 수 있다.
스페인·라틴아메리카편은 후안 룰포의 ‘날 죽이지 말라고 말해줘!’,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거대한 날개 달린 상늙은이’ 등 12명의 단편 19편이 실렸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마르케스처럼 익숙한 작가들도 있지만 이 가운데는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명편이 고루 섞여 있다.
중국편은 중국 근대문학을 연 루쉰을 비롯, 도시적 감각과 일상을 다루며 심리분석 등의 기법을 활용한 스져춘 등 20세기 전반기 중국 문학의 흐름을 살필 수 있는 주요 작가 8명의 작품 9편이 실렸다.
특히 폴란드편은 국내에서는 접하기 어려웠던 폴란드 문학의 정수를 맛볼 수 있는 작품 10편으로 구성됐다. 19세기말 폴란드 빈민층의 처참한 생활상을 어린 세 형제의 눈으로 바라본 마리아 코노프니츠카의 ‘우리들의 조랑말’, 19세기 후반 공업도시 우츠를 배경으로 서구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정착되어가는 폴란드 사회를 여러 각도에서 파헤친 볼레스와프 프루스의 ‘파문은 되돌아온다’ 등이 실렸다.
창비세계문학은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작품들 위주로 선집을 꾸린 게 특징이다. 문학사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거나 기존 번역본이 만족스럽지 않는 등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가급적 이미 번역된 작품은 피했다고 창비는 밝혔다. 일본편은 14편 중 11편이 국내에 처음 소개된 작품들이고 프랑스편, 스페인·라틴아메리카편 등 다른 언어권 작품들도 대부분 처음 번역된 것들이다.
김정혜 창비 문학출판부장은 “단편은 현대사회의 단면을 포착하는 가장 유력한 문학형식”이라며 “각 언어권별로 국내 최고 수준의 번역자들을 편역자로 위촉해 작품을 엄선하고 번역에 공을 들였다”고 밝혔다. 김 부장은 “이탈리아어권 정도가 빠졌지만 전 세계 주요 언어권, 주요 작가들의 작품을 망라했다”며 “선집을 추가로 낼 계획은 아직 없다”고 덧붙였다.
라동철 기자 rd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