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 여유있는 관조… 장석주 열네 번째 시집 ‘몽해항로’

입력 2010-01-17 17:50


장르를 넘나들며 활발한 저술활동을 해온 시인 장석주(56)가 열네 번째 시집 ‘몽해항로’(민음사)를 출간했다. 몽해항로는 죽음을 향해 가는 험난한 길이라는 뜻이다. 시인은 이 시집에서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성찰을 보여준다.

“요즘 웬만한 길흉이나 굴욕은 잘 견디지만/사소한 일에 대한 인내심은 사라졌다./어제 낮에는 핏물이 있는 고기를 씹다가/구역질이 나서 더 먹지를 못했다./비루해, 비루해. 남의 살을 씹는 거,/내 구강에서 날고기 비린내가 난다”(‘몽해항로 2’의 일부)

시인은 때로는 엄혹하게, 때로는 안쓰럽게, 때로는 관조와 여유의 시선으로 이제는 시가 세포를 이룬 자신의 생에 대해 노래한다.

“허나 몸은 사상누각이니/그 집이 영원하다고 착각하지는 마라./(중략) 비를 만나거든 피하지 말고/그 자리에서 천둥으로 울고 번개로 화답하라.”(‘시1’의 일부)

시인은 현재 서울 서교동에 있는 창작실 ‘서향재’와 경기도 안성 자택 ‘수졸재’를 오가며 글을 쓴다. 수졸재는 절대자유와 무위자연의 삶에 다가가기 위해 10년 전에 마련한 것이다. 자연 안에 기거하며 깨달은 오묘한 조화는 우리 주변의 사소한 것들에 대한 예술적 통찰로 드러난다.

“늙어 주름 많은 몸을/벼룩이 깨문다,/따끔따끔,/아프지 않다./아직은 살았구나./벼룩아, 네가 깨물어 생긴 인연/고맙다!”(‘벼룩’ 전문)

“취객의 토사물에/달라붙은 중생(衆生),/함부로 비웃지 마라./먹고 사는 일은/숭고한 수행(修行),/장엄한 일이다.”(‘비둘기’ 전문)



파리 모기 매미 벼룩 얼룩 빨래 등 보통 사람에게는 하찮기 그지없는 존재들 모두가 장석주에겐 시로 다가온다. 그 시선은 결국 사랑이며, 사랑을 표현하는 능력은 생에 대한 깨달음에서 나온다.

문학평론가 문광훈은 해설에서 “시는 아직 오지 않은 참되고 선하며 아름다운 것들을 지금 여기로 불러들이는 사랑의 방식이어야 한다. 이 사랑의 방식을 체현하고 있는 장석주의 시는 분명 오늘의 문자 위축 상황을 거스르는 소중한 노작(努作)이다”고 평했다.

시인은 서문에서 “결국 시는 한 줄이다. 한 줄로 압축할 수 없는 것은 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우리 시대 최고의 다독가이자 북멘토로 불리며 ‘문장’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해온 시인의 ‘시론(詩論)’이 결국 ‘시는 한 문장’이라는 단순하면서 엄정한 논리로 귀결되듯, 그의 시 역시 결국은 생에 대한 사랑 한 줄기에서 시작하는 셈이다.

양지선 기자 dybs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