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등 끄고 별을 켜라”… 플러그 뽑는 사람들

입력 2010-01-15 22:17


꼬마전구 조명·젖은 빨래로 가습·절전 인센티브까지

에너지 절약 떠나 조금 불편하지만 ‘넉넉한 삶’ 배워

기록적 한파로 겨울철 전력 수급에 빨간불이 켜진 가운데 ‘플러그를 뽑는’ 사람들이 있다.

경기도 성남의 한 아파트 주민들은 플러그를 뽑으며 이웃에, 사회에 에너지가 되고 있다. 불편하지만 환경을 지키면서 사는 법을 배우며 마음이 포근한 겨울을 보낸다.

성남시 정자동 느티마을 공무원아파트에 사는 주부 강순녀(52)씨는 매년 겨울 7만원 가까이 나오던 난방비를 최근 2만4000원까지 줄였다. 전기요금도 10븒 이상 절감했다. 그만의 비법은 무엇일까.

강씨는 낮에 보일러를 잘 켜지 않고 저녁에도 실내 온도를 20도 안팎으로 조절했다. 대신 거실에 카펫을 깔고, 집에서도 두꺼운 겨울 양말과 모자를 쓰고 다닌다.

화장실을 사용할 때도 마찬가지다. 화장실을 사용하고 나오는 가족에게 “불 끄지 마”라고 말하곤 재빨리 화장실로 뛰어가는 것. 전등을 껐다 켰다 반복하면 전기요금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강씨는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에너지를 아끼는 게 당연하지만 가끔 가족들이 궁상맞다고 놀린다”고 웃었다.

강씨뿐만이 아니다. 이 아파트 1776가구에 에너지 절약은 자연스러운 일상이다. 지난해 4월 이화연(55) 부녀회장이 “주부가 앞장서서 에너지 사용을 줄이고 환경도 살리자”고 제안한 것이 시작이었다. 매월 동별로 전년 대비 전기요금 절약 금액을 산정하고, 1등을 한 동은 상장을 받았다. 아줌마들 사이의 경쟁도 치열했다. “전기요금 얼마나 나와?” 한때 하루 첫 인사였다. 지난해 4~10월에는 아파트 주민 전체가 마음을 모아 전기요금 900만원을 절약하는 작은 기적도 이뤘다.

이들은 어떻게 전기 사용량을 줄일까. 쓰지 않는 전기 플러그를 뽑거나 절전형 멀티탭을 사용해 대기전력을 차단했다. 조명등은 꼬마전구로, 가습기는 실내에 빨래를 널어 대신했다. 지난달부터는 내복 입기 운동을 시작했다.

절약이 처음부터 쉬웠던 것은 아니다. 퇴근한 남편은 춥다고 불평했고, 자녀들은 엄마의 잔소리를 귀찮아했다. 권광선(50)씨도 그런 경우다. 권씨는 건전지로 불을 밝히는 꼬마전구를 직접 만들어 중학생 아들에게 건넸다. “불 꺼”라는 말을 듣기 싫어하던 아들은 요즘 밤에 화장실에 갈 때도 거실 형광등을 켜는 대신 꼬마전구를 들고 간다. 엄마가 깜빡하면 아들이 대신 불을 끌 정도다.

플러그를 뽑는 행위는 단순히 전기요금을 아껴 보자는 차원으로 끝나지 않았다. 자녀에게는 실천하는 환경 교육, 개인에게는 느리게 사는 법과 이웃사랑을 안겨줬다. 지난해 8월 19일에는 ‘불을 끄고 별을 켜다’란 행사를 마련, 오후 9시부터 5분간 아파트 모든 전깃불을 껐다. 불 꺼진 아파트 마당에는 양초 수백 개가 별 모양을 이뤘다. 주민들은 직접 악기를 연주하며 한여름 밤의 낭만을 만끽했다.

박유리 기자 nopim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