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 지진 대참사] 콘크리트 더미서 따뜻한 생명의 기적

입력 2010-01-15 21:45

필사적 노력끝에 구조 속출

인근 차고서 아기 탄생도

삽 한자루·물 한병이 생사 갈라


미 CNN 방송은 15일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지진 참사 현장에서 “때론 천사들이 승리한다(Sometimes, the angels win)”고 보도했다. 한 명이라도 더 구하기 위한 필사적 노력들이 작은 기적을 낳고 있다는 것이다.

한 11세 소녀가 무너진 철근 더미에 오른발이 낀 채 울부짖고 있었다. 곱게 땋은 머리는 이미 먼지투성이였다. 소녀를 구하기 위해 여러 명의 성인 남자들이 24시간 동안 건물 잔해를 파헤쳤지만 철근 더미은 요지부동이었다. 소녀의 다리를 절단해야 할 상황이었다. 다시 해가 지고 모두 절망에 빠졌을 때 어디선가 전기톱과 작은 발전기가 등장했다. 소녀는 2시간 만에 건물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고 CNN은 전했다.

브라질의 관영 아젠시아 브라질 통신은 지진의 폐허 속에서 아기가 탄생했다고 보도했다. 지난 12일 저녁 지진 발생 당시 놀란 산모가 갑자기 산통을 시작했다. 브라질 구조대는 산모를 긴급히 인근 차고로 옮겼고, 거기서 새 생명이 탄생했다. 구조대 파브리고 모우라 대장은 “아기는 건강하지만 산모는 출혈이 멈추지 않아 생명이 위태로운 상태”라고 전했다.

10대 소년 장 버르프리는 학교 건물이 무너지면서 건물 더미에 그대로 파묻혔다. 천만다행으로 건물 옆에 주차돼 있던 경찰차 덕분에 목숨은 건졌지만 차와 건물 사이에 팔다리가 모두 끼어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잃어버린 아들을 찾아 헤매던 아버지가 “구해 달라”는 아들의 외침을 들은 것은 다음날 오후였다. 장을 짓누르는 거대한 콘크리트 장벽은 바람만 살짝 불어도 무너질 듯했다. 현장에 몰려온 100여명의 시민과 기자들도 선뜻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다.

하지만 아버지와 장의 형들은 밤이 새도록 맨손으로 건물 더미를 파헤쳤고, 결국 하루가 지나서야 장은 구출됐다. 장의 어머니는 춤을 췄고, 사람들은 박수를 쳤다. 손을 하늘 위로 들어올리고 기도하는 사람도 있었다.

기적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자기 집에 깔린 아홉살 소녀 아리사는 이틀간 어둠 속에서 “살려 달라”고 소리쳤다. 14일에야 아리사를 발견한 주민 12명이 구조에 나섰지만 몇 시간 후 아리사는 숨졌다고 AP 통신이 전했다.

무너진 건물 아래서 구조를 호소하는 목소리는 점점 잦아들고 있다. 사람들은 맨손으로 흙을 파헤치고, 콘크리트 더미를 지렛대 삼아 더 큰 잔해를 옮기고 있다. 구조된 사람들도 치료를 받지 못해 죽어가고 있다. 아이티 적십자는 사망자 수가 5만명에 이르고 이재민이 300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포르토프랭스에서는 지금 삽 한 자루, 물 한 병이 삶과 죽음을 가르고 있다.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