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셉템버 이슈’ 그녀의 손끝에서 패션이 탄생한다

입력 2010-01-15 22:30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실제 모델로 유명한 미국 ‘보그’(Vogue) 편집장 안나 윈투어. 그녀는 20년간 편집장 자리를 지키며 천재적인 패션감각과 칼 같은 일처리로 패션계의 절대적 숭배를 받는 인물이다. ‘패션계의 교황’, ‘세계 여성의 치마 길이를 좌지우지하는 한 사람’, ‘모든 컬렉션의 첫 줄에 앉는 사람’, ‘그녀가 오지 않으면 패션쇼가 시작되지 않는다’ 등 그녀를 수식하는 말들은 그녀가 세계 패션계에 어떤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지 단적으로 드러낸다.



패션계의 한 해는 9월에 시작된다. 매년 9월호 ‘보그’는 기록적인 판매부수를 올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영화 ‘셉템버 이슈(THE SEPTEMBER ISSUE)’는 840쪽, 2㎏ 무게의 역대 최고 두께를 자랑하는 2007년 9월호 ‘보그’ 제작과정을 다뤘다.

안나를 비롯한 세계 최고의 에디터들이 모여 아이템 기획회의를 하는 것부터 화보 구성과 사진 촬영 등 8개월간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보여준다.

잡지를 만드는 과정에서 안나가 한 번 결정을 내리면 아무도 거스를 수 없다. 세계 최고의 에디터들이지만 모두가 그녀의 표정을 살피고 결정을 기다린다. “결국은 안나의 말이 맞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독설로 유명한 안나지만 부하 직원을 인정하는데도 인색하지 않다. 안나와 의견충돌이 가장 잦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그레이스 코딩턴에 대해서 안나는 “그레이스는 천재다. 누구도 그녀처럼 사진을 시각화하거나 패션 연출을 이해할 수 없다”라고 극찬한다. 1941년생인 그레이스는 현존하는 최고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인정받는 인물로 59년 모델로 데뷔, 95년부터 미국 ‘보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 중이다.

영화에는 칼 라거펠트, 장 폴 고티에 등 현존하는 최고 유명 디자이너들 뿐 아니라 코코 로샤 등 세계 정상급 모델과 표지를 장식한 배우 시에나 밀러도 등장한다. 디자이너들은 안나 윈투어에게 패션과 쇼에 대한 조언을 구하고, 그녀가 자신의 쇼에 참석해주길 절실히 원한다. 미국 영부인 미셸 오바마가 즐겨 입으며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신인 디자이너 타쿤은 “안나는 패션계의 마돈나”라고 그녀를 치켜세운다.

패션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는 잡지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보는 재미만도 쏠쏠하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큰 재미는 61세의 안나와 69세의 그레이스가 최첨단의 패션 현장에서 열정을 불태우고 서로를 인정하며 일하는 모습에 있다. 그야말로 할머니 나이가 된 두 사람이지만 그들은 여전히 가장 정력적으로 활동하고 최고의 실력자로 손꼽힌다. 끊임없이 경쟁하고 협력하며 더 나은 잡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그들의 모습은 감동 그 자체다.

양지선 기자 dybs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