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한 ‘피겨 왕국’ 미국의 한탄… “연아가 무섭고 부러워”

입력 2010-01-14 19:04


과거 미국은 피겨의 나라였다.



페기 플레밍(1968년 동계올림픽 여자 피겨 금메달), 데이비드 젠킨스(1960년 동계올림픽 남자 피겨 금메달)는 세계 피겨 스케이팅을 예술의 단계로 승화시킨 미국의 자존심이었다.

1990년대 이후 미국 남자 피겨는 러시아에 밀려 침체기를 보냈으나 적어도 여자 피겨 만큼은 세계 최고를 자부했다. 최근 5차례 동계올림픽에서 미국은 여자 피겨에 걸린 총 15개 금·은·동메달 중 절반이 넘는 8개(금3·은3·동2)를 가져갔다. 낸시 캐리건, 미셸 콴, 타라 리핀스키는 올림픽 메달 색깔을 떠나 미국이 배출한 세계 피겨 여왕들이었다.

피겨 제국 미국이 한국의 김연아(20·사진) 때문에 마음이 많이 상한 모양이다. 미국을 대표하는 세계 최대 통신사 AP는 14일(한국시간) ‘미국 여자 피겨는 밴쿠버에서 별(star) 볼일 없을 것’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한국을 부러워하며 몰락한 미국 피겨 현실을 개탄하는 내용이다.

AP는 “이번 시즌(2009∼2010) 그랑프리 시리즈 참가 대회에서 모두 우승한 김연아는 가장 강력한 밴쿠버 동계올림픽 우승후보”라며 “세계 챔피언 김연아는 한국에 돌아갈 때 보디가드가 필요할 정도의 대스타(huge star)가 됐다”고 보도했다. 이어 “김연아는 지난해 9월 트로페 에릭 봉파르(올 시즌 그랑프리 첫 대회)에서 2위 아사다 마오(일본)를 35점 이상의 깜짝 놀랄 점수차로 이겼다”고 소개하면서 아사다를 김연아 아래로 평가했다.

변변한 스타가 없는 미국은 밴쿠버 동계올림픽 여자 피겨에 2명을 내보낸다. 가장 앞서가는 선수는 레이첼 플랫(18)인데 그나마 밴쿠버 메달권 밖(세계랭킹 9위)이다. 그 뒤로 올림픽 참가에 의미를 두는 애슐리 와그너(19·12위), 캐롤라인 장(17·13위)이 있다. 미국의 출전 선수 명단은 이번 주말 벌어지는 전미 피겨 선수권대회가 끝나야 최종 확정된다.

미국은 밴쿠버는 포기하고 4년 뒤 소치(러시아) 동계올림픽을 기약하는 분위기다. 미국은 1961년 여자 피겨 대표팀 선수 전원이 비행기 사고로 숨지는 사고를 겪었다. 이 때문에 미국은 3년 뒤 벌어진 1964년 인스부르크 동계올림픽 여자 피겨 메달이 없다.

미국 여자 피겨가 1950년대 이후 동계올림픽에서 메달을 따지 못한 것은 1964년 대회가 유일하다. 김연아는 미국의 살아있는 악몽이 되고 있다.

이용훈 기자 co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