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 반성없는 사법부] 당시 기소했던 검사들 “오래돼 기억이 가물가물…”

입력 2010-01-14 21:58

(중) 시국·공안사건 재판관들

재심 결과 무죄가 확정된 1960∼80년대 시국사건을 기소했던 검사 출신 인사들은 대체로 당시 사건을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했다. 시국·공안사건의 특성상 중앙정보부(국가안전기획부), 군 수사기관, 경찰 등이 먼저 수사한 뒤 검찰에 송치된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불법행위를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81년 서울지검 검사로 재직할 때 박동운 일가 간첩조작 사건(박씨는 무기징역 선고, 2009년 재심에서 무죄)을 기소했던 안강민 변호사는 14일 “당시 사건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면서도 “안기부가 조사한 사건을 검찰이 기소했으며 사건 당사자의 어머니가 자백을 많이 해 별 무리 없이 처리했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억울하다는 피해자의 호소를 무시한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피해자에게 보상을 해줘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조총련 간부인 숙부로부터 간첩 지령을 받은 혐의 등으로 이장형씨(무기징역 선고, 2008년 재심에서 무죄)를 기소했던 한나라당 이사철 의원은 “84년만 해도 법원을 포함한 수사기관이 절차적 중요성을 따지지 않던 시절”이라며 “이씨가 치안본부 대공수사단에 57일간 불법 구금됐고 고문과 협박을 당해 허위진술을 했다는 얘기를 검찰 조사 과정에서 밝히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특히 “80년대 간첩 사건은 수사기록에도 언제 잡아왔는지 없는 경우가 허다했다”며 “검사가 당연히 언제 데려왔는지 따져 묻는 게 맞지만 당시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납북어부 서창덕 간첩조작 사건(당시 징역 10년 선고, 2008년 재심에서 무죄)을 맡았던 신상규 변호사는 “84년 군산지청에 근무하던 당시 공안검사 대신 기소했던 사건”이라며 “피고인이 자백을 하고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이전에도 처벌받는 등 의심할 만한 정황도 많아 기소했다”고 말했다. 신 변호사는 “피해자가 검찰 조사 때와는 달리 법정 최후진술에서 군 수사기관에 오랫동안 감금돼 억지로 자백했다는 말을 한 것 같다”고 회상했다.

이제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