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 지진 대참사] 유엔지원단 이선희 소령이 본 참혹한 현장
입력 2010-01-14 18:38
“도로마다 부상자·건물 잔해… 주민들 물 부족 고통”
“거대한 폭동 후의 참혹한 모습 같았습니다. 대통령궁에 있는 돔 중앙부분이 내려앉았고 이곳에서 가장 큰 호텔인 몬타로 호텔은 완전히 파괴됐습니다. 2층 이상 건물은 남아 있는 것들이 거의 없고 도로는 무너진 건물의 잔해로 차량이 다닐 수 없을 정도입니다.”
유엔아이티안정화지원단(MINUSTHA) 일원으로 아이티에서 근무하고 있는 유일한 한국군인 이선희(43) 소령은 14일 “식량과 물이 많이 모자란다”고 말했다. 통신 수단은 대부분 불통상태다. 이 소령은 외부와 연결되는 유일한 소통 수단인 유엔지원단의 위성전화를 통해 아이티 상황을 전했다.
이 소령에 따르면 강진이 강타한 아이티는 부상자들이 도로에 방치돼 있는 등 아비규환이었다. 14일 소규모 슈퍼마켓 몇몇 곳이 문을 열었지만 식료품 구입은 여전히 어렵고 식수 부족으로 주민들이 고통받고 있다. 안전지대로 이동하는 학생들의 긴 행렬이 이어지고 있고 부상자들을 나르는 소형 차량들이 건물 잔해를 뚫고 곡예하듯 위태롭게 병원을 오가고 있다. 중국구조팀 60명을 비롯해 각국 구호팀들이 속속 도착하고 있고 유엔평화유지군도 구호 작업에 동참하고 있지만 여전히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이 소령은 이날 오전 유엔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우리 교민들이 많이 살고 있는 소나피 공단을 찾아 교민들의 안전을 확인했다. 소나피 공단은 봉제공장들이 밀집돼 있는 곳으로 한국 교민은 66명 정도라고 말했다. 소나피 공단을 둘러싸고 있는 벽돌 담장은 무너져내려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고 군데군데 사무실로 사용하거나 창고로 이용됐던 컨테이너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이 소령은 “60대 중반인 목사님이 많이 놀라 안정이 필요한 것 외에는 다친 사람은 없고 다들 건강하다”며 “구체적인 물적 피해 현황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공장이나 주택 일부는 파손된 것 같다”고 전했다.
강진이 발생한 12일(현지시간) 오후 4시55분쯤 이 소령은 유엔지원단 건물에서 일하고 있었다. 평상시와 다름없이 섭씨 30도가량의 더운 날씨에 바람이 조금 강한 편이었다. 갑자기 지붕에서 큰 돌덩어리가 우수수 떨어지는 것 같은 굉음이 들렸고 건물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 소령이 근무하는 4층 콘크리트 건물은 어지러움을 느낄 정도로 심하게 흔들렸다. 냉온수기와 책상, 책장이 모두 쓰러졌고 벽면은 순식간에 군데군데 균열이 생겼다. 진동은 30분 정도 계속됐다. 이 소령은 이후 여진이 20회 정도 있었고 지금도 조금씩 건물이 흔들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 소령은 육군에서 군수 업무를 담당했으며 지난해 11월 1년 임기로 유엔평화유지군 군수담당 장교로 아이티에 파견돼 근무 중이다.
최현수 군사전문기자 hs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