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 지진 대참사] 가난·내전·부패 지진 피해 키웠다

입력 2010-01-14 20:40

인구 70%가 실업자 신세… 도시 슬럼가로 몰려 희생

아이티의 지진 피해를 더욱 키운 건 가난과 부패다.

이번 지진도 충분히 예고됐고 반복적으로 경고됐다. 하지만 내전과 가난, 부패가 만연한 이 나라 정부와 국민들은 사전에 대처할 엄두를 내지 못했었다고 AP통신 등 외신들이 13일 전했다.

지구물리학연구소 폴 만 수석연구원은 2004년 지구물리학회지에 아이티와 도미니카공화국에 대규모 지진 위험이 있다는 연구 결과를 실었다. 그는 2008년 3월 도미니카공화국 산토도밍고에서 열린 카리브해 지질학 콘퍼런스에서도 같은 경고를 담은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전문가들의 예견이 아니더라도 아이티는 기본적으로 지진이 언제든 생길 수 있는 조산대에 위치한 나라다. 그럼에도 위험은 무시됐다. 수도 포르토프랭스에는 지진에 대비해 설계된 건물이 거의 없다. 집들이 너무도 조악하게 지어져 가벼운 지진에도 쉽게 무너져 사람을 가두는 ‘죽음의 올가미’가 될 수 있다고 미 일간 오로라센티널은 전했다.

또 ‘재난국’이란 오명을 얻은 것처럼 허리케인은 매년 여름 불청객처럼 찾아온다. ‘허리케인 벨트’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2008년에도 8, 9월 허리케인으로 800명이 죽고 국내총생산(GDP)의 15%(약 9억 달러)의 피해를 입었다고 미국의 소리(VOA) 방송은 전했다.

정부는 재해 앞에서 무력했다. 빈번한 정권 교체와 쿠데타 등 심각한 정치 혼란으로 점철된 현대사 탓이다. 현 르네 프레발 대통령도 2006년 선거부정 시비 속에 당선됐다.

남반구 최빈국으로 꼽히는 가난도 지진 피해를 자초한 주요 요소다. 900만 인구의 70%가 하루 2달러 미만으로 산다. 인구의 3분의 2가 실업자 신세다. 이들이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모여들면서 전체 인구의 4분의 1이 넘는 200만명 이상이 수도에 모여 슬럼가를 형성하고 있다.

지진 자체가 슬럼가로 넘쳐나는 포르토프랭스 근처에서 발생하면서 막대한 인명 피해가 날 수밖에 없었다. 산이 많은 나라지만 난방과 취사를 위한 남벌 때문에 지진으로 인한 대규모 산사태가 곳곳에서 일어난 것으로 추정됐다. 시골 지역은 피해 규모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