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이라도 더…” 절망 속의 인류애
입력 2010-01-14 21:48
국제사회, 구조대·구호물자 등 신속 지원
한순간에 모든 것 잃은 주민들에 큰 힘
“베니 수와 레터넬(주여, 돌보소서).”
최악의 지진이 발생한 아이티에 13일(현지시간) 다시 밤이 찾아왔다. 뉴욕타임스(NYT)는 지진 뒤 이틀째 밤 풍경을 이렇게 전했다. ‘폐허 위로 어둠이 내려앉자 누군가 촛불을 켰다. 텅 빈 거리에 나 앉은 사람들은 아이티 말로 찬송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진료소 안에서도 같은 찬송가 소리가 들려왔다.’
지진 발생 이튿날인 이날 아침 “타타타타” 굉음과 함께 아이티의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하늘에 헬기가 떴다. 무너진 건물 사이를 헤매던 사람들이 헬기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아이티 사람들에게 국제사회의 신속한 지원은 지옥에서 만난 천국의 손길 같았다.
이웃 도미니카공화국에서 아침 일찍 날아온 이 헬기에는 긴급구호 물자와 구조대, 미국 CNN방송의 앤더슨 쿠퍼 기자가 타고 있었다. 헬기 조종사 죤 레스티투요는 “무너진 대통령궁을 보는 순간 등골이 오싹했다”고 CNN에 말했다.
적십자 국제구호팀은 응급차를 타고 달려왔다. 미국 캐나다 등 7개국 적십자팀으로 이뤄진 이들은 전날 도미니카공화국의 산토도밍고에서 새벽에 결집해 6시간을 달려왔다. 현장지휘자 콜린 채퍼른은 “공항마저 지진에 무너져 육로로 올 수밖에 없었다”며 “적십자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구호단체가 조금이라도 더 빨리 아이티를 돕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다”고 NYT에 전했다.
전날 밤 쿠바 관타나모의 미군기지를 출발한 미 국경수비대의 수송선 포워드호도 이날 아침 포르토프랭스 앞바다에 도착했다. 포워드호가 공중관제를 맡으면서 구호물자를 실은 비행기와 헬기들이 속속 무너진 공항의 활주로에 착륙했다.
지진이 발생한 날은 절망적이었다. 오후 늦게 찾아온 지진, 무너진 건물들, 그리고 어둠. 전기도 통신도 끊긴 상황에서 사람들은 거리 곳곳에서 눈물을 흘리며 절규했다. 성당이 무너져 요지프 세르쥬 미오 대주교가 사망했고, 유엔 직원 150명이 실종됐다. 가톨릭구조대의 로빈 피서는 “응급차나 소방차는커녕 구조대원도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맨손으로 무너진 집을 파헤치며 가족을 찾고 있었다”고 NYT에 말했다.
날이 밝으면서 구호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유니세프는 어린이들을 위해 임시탁아소를 설치했다. 800여명의 ‘국경없는 의사회’ 회원들은 포르토프랭스를 비롯한 재난 현장 곳곳에 천막을 치고 응급진료를 시작했다. 부상자들이 몰려들었다. 육로로 연결된 도미니카공화국을 통해서도 구호물자와 인력이 속속 도착했다.
거리엔 시신이 널브러져 있고, 아이들은 울먹이며 부모를 찾았다. 물도 전기도 공급되지 않는 상황이다. 그래도 사람을 구하려고 달려온 사람들과 이재민들은 서로에게 위로와 희망을 느꼈다. 촛불을 밝힌 포르토프랭스에서는 새벽까지 찬송가가 끊이지 않았다.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