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진의 이건 뭐야?] 품절남,재고녀

입력 2010-01-14 18:04


부쩍 ‘품절남’ ‘품절녀’라는 말이 많이 들린다. 탤런트 결혼 소식을 보도할 때면 으레 ‘○○○, 품절남 대열 합류’라고 한다. 배우자가 생겨 일찌감치 결혼 시장에서 ‘품절’된 사람을 재치 있게 부르는 표현이다. 이를테면 여배우 한가인은 너무 일찍 품절녀가 됐다거나 탤런트 이요원이 연기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은 또래보다 먼저 자식 낳고 안정된 가정을 꾸려 품절녀가 된 덕이란 보도 등에서 이 단어의 용법이 분명해진다.

품절남, 품절녀라고 할 때 사용되는 ‘품절’이란 단어는 ‘선망’ 없이 설명될 수 없다. 요즘처럼 전자상거래가 활성화되지 않은 때라면 ‘품절’이 주는 애절한 생생함이 쉽게 다가오지 않았을 것이다. 꼭 사고 싶은 물건이 쇼핑몰에 입고됐을 때 이를 구입하기 위해 마우스를 마구 클릭하며 온갖 노력을 다 해도 품절돼 버릴 경우가 있다. 아니면 너무 비싸 ‘눈팅’만 실컷 하다 누군가 능력 있는 사람이 나타나 품절되면 애초에 내 물건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그러면서도 아쉽다. 이것이 디지털 시대에 상거래하는 네티즌의 오락이자 생활이다.

품절남과 품절녀는 결코 내 손에 들어올 수 없는 사람, 내 손이 닿지 않을 사람을 향한 선망이 담겨 있는 단어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 품절되기는커녕 누구의 손도 타지 않고 진열장이나 창고에 얌전히 놓여 있는 스스로를 말할 때는 ‘재고남’ ‘재고녀’란 단어를 쓴다.

“그렇지 않아, 나는 골드미스터에 골드미스야”라고 생각하려 애쓰면서도 사실 죽도록 결혼하고 싶은데 일찍 품절되지 못한 사람들은 피할 수 없이 ‘내가 재고인가’ 하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결혼 적령기 자식을 보며 흔히 “언제 치우나” 탄식하는 부모들과 창고에서 먼지 쌓인 재고품을 걱정하는 판매자의 근심 어법은 흡사한 데가 있다.

갔다 온 사람들, 결혼은 해 봤지만 이혼한 사람들은 또 뭐라 부르는가 보았더니 ‘반품남녀’다. 한 번 갔다가 반품돼 돌아왔다는 것이다. 반품됐든 어쨌든, 이 경우 일단 갔다는 왔기에 선망을 사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몇 세기 전만 해도 힘 있는 인간은 사회적 약자를 판매와 구매, 품절과 반품의 대상으로 거래했다. 우리가 인터넷 쇼핑몰에서 흔히 읽는 상품 설명은 그때도 사용됐을 것이다. “젊고 아름다운 여성 입고됐습니다. 집안일 잘하고, 몸에 흉 같은 것도 없고, 건강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있는 건 물론이죠.” “무쇠처럼 튼튼한 사내아이가 입고됐습니다. 팔다리가 단단해 아무리 채찍질해도 표시도 안 납니다. 우직해서 도망 같은 건 절대로 안 할 겁니다.”

그러고 보니 요즘도 우리는 이 비슷한 광고 문안을 본다. 착하고 예쁘고 젊고, 어른 잘 섬기고 절대 도망치지 않는 여성. 이들과 결혼, 아니 거래를 하라는 현수막이 도처에 널려 있다. 일찍 제 갈 길 가버린 품절남녀, 도통 팔리지 않아 초조한 재고남녀, 한 번 갔다 오긴 했지만 그래도 가보기는 한 반품남녀. 재미있는 표현이지만 재미있어 하기 전에 조금 더 사색이 필요할 것 같다.

김현진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