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손자에 대한 애틋한 사랑·그리움… ‘할머니의 편지’
입력 2010-01-14 17:34
할머니의 편지/배지은 글·그림/계림북스
“손주 보아라. 할미는 오늘도 네 사진을 들여다본단다. 뺨을 어루만지고 머리를 쓰다듬으면 까르르 웃음소리가 온 방을 가득 채운다. 할미 손만 닿으면 방긋 웃던 네 얼굴이 새록새록하구나.”
눈 내리는 겨울 어느 날 새벽 서울의 어느 달동네 허름한 집.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사는,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가 덩그런 방안 백열등 아래서 손자의 사진을 꺼내 쓰다듬으며 추억을 더듬는다.
하얀 눈이 내리던 날 새벽 손자가 태어났다는 소식에 할머니는 한달음에 달려 갔었다. 아장아장 걸음마를 떼던 손자는 이제 곧 학교에 갈 나이다. 하지만 할머니는 그런 손자가 눈길에 넘어지지는 않을까 여전히 걱정이다.
할머니는 당신의 소식을 들려준다. “할미는 요즘 돈을 많이 번단다. 조금만 부지런하면 이렇게 돈을 벌 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따뜻한 고기 반찬만 먹어서 살도 꽤 쪘단다. 뚱보할미라고 놀리면 어쩌나.” 할머니는 종이상자 등을 수집해 고물상에 내다 팔아 푼돈을 벌고 고궁 옆 무료급식소에서 점심 끼니를 해결하곤 하지만 그런 내색은 보이지 않는다.
할머니는 손자가 몹시 보고 싶다. “펄펄 날아 우리 손주 보러 갈까. 조금만 기다리렴. 우리 손주가 좋아하는 인형 사서 갈테다.”
힘겹게 번 돈으로 손자에게 선물할 곰인형을 사들고 집으로 돌아 온 할머니는 연탄을 갈아 썰렁해진 방을 데운 뒤 잠자리에 든다. 손자에 대한 그리움을 가슴에 꼭 품고서. 깨진 유리를 테이프로 붙인 창문으로는 가로등 불빛이 스며든다.
‘할머니의 편지’는 손자에 대한 할머니의 절절한 사랑을 담은 그림 동화다. 할머니는 경제적으로도 어렵고, 혼자 외롭고 살고 있지만 자신에 대한 걱정보다는 언제나 손자 생각 뿐이다. 할머니의 애틋한 마음이 담긴 편지글은 할머니가 처한 고단한 현실과 대비되면서 잔잔한 감동을 불러 일으킨다.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한 작가가 직접 그린 수채화같은 그림도 정감있다.
작가는 “자식들을 위해 일생을 바치고도 무거운 삶의 수레를 끌고 가시는 할머니들. 그분들의 시린 손을 잡아 드리는 마음으로 이 책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고 말했다.
라동철 기자 rd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