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전쟁에 얽힌 섬뜩한 진실 파헤치다… ‘발칙한 군사학’

입력 2010-01-14 17:37


발칙한 군사학/장리지, 야오샤오화/예문

“안녕하세요? 초콜릿 하나만 주실 수 있어요?” 귀여운 소년이 미군에게 다정하게 말을 건넨다. 군인은 미소를 지으며 안주머니에서 초콜릿을 꺼낸다. 방심한 틈을 타 소년은 권총을 꺼내 군인을 쏜다. 소년은 눈앞에서 고꾸라지는 군인을 바라보며 웃는다.

1944년 12월 히틀러는 나치 소년결사대를 조직했다. 1929∼30년 사이에 태어난 남자아이를 소집해 살인병기로 훈련시켰다. 적을 교란시키기 위해 군복대신 평상복을 입혔다. 소년결사대는 곳곳에서 연합군을 공격해 그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한 소년은 연합군에 잡히자 “원수님을 위해 죽어야 하는데…”라며 풀밭을 뒹굴며 오열했다. 그 정도로 깊이 세뇌됐고 성인보다 위험하고 광적이었다.

중국 광명일보출판사 편집자문위원 장리지와 책임편집위원 야오샤오화는 1·2차 세계대전, 베트남 전쟁 등 세계사에 큰 흔적을 남긴 전쟁 속에서 주목할 만한 37가지 이야기를 책에 담아냈다.

나치에 세뇌돼 전쟁도구가 된 소년들처럼 민간인의 무고한 희생은 전쟁의 가장 어두운 면이다. 1968년 미국 타이거부대 소속 육군병사 45명은 한 마을에 투입됐다. 이들은 대오를 정렬하자마자 무차별 학살을 저질렀다. 그들의 총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눈에 보이는 모든 사람을 향해 불을 뿜었다. 이른바 ‘미라이 학살’이다. 베트남 미라이 마을이 베트콩을 지원하고 있다는 판단 하에 미군이 주민 수백 명을 학살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한 신문에 의해 폭로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하지만 법의 심판을 받은 사람은 단 한 명이었다.

책은 굵직한 사건이나 인물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도 풀어놓는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 성공에는 ‘가짜’ 몽고메리 장군의 공이 컸다. 당시 연합군의 총 사령관이던 몽고메리는 독일군에게 영국군의 상징과 같은 존재였다. 따라서 그가 있는 곳이 곧 작전이 펼쳐지는 곳이라고 해석했다.

가짜 몽고메리 역은 메이릭 클리프톤 제임스 중위가 맡았다. 연극배우였던 그는 외모는 물론 말투와 행동까지 완벽하게 몽고메리를 흉내냈다. 그는 여러 곳을 다니며 거짓 정보를 흘려 독일군을 교란한다. 덕분에 연합군은 비밀리에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진행할 수 있었다.

‘사막의 여우’로 불리며 연합군을 공포에 떨게 했던 롬멜 장군은 과대평가된 케이스다. 그가 북아프리카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곳은 중요도나 규모가 떨어지는 전장이었다. 그는 아프리카에서 몽고메리에 패해 튀니스를 내줬고, 노르망디 상륙작전 때는 정보를 잘못 판단해 아내의 생일 준비를 하다가 연합군의 상륙 소식을 접하는 실수를 범하기도 했다. 오늘날 롬멜은 전술에는 뛰어나나 전략에는 비범하지 않은 군인으로 기억된다.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은 전쟁광의 마지막은 초라하고 쓸쓸했다. 무솔리니는 죽어서 수난을 당했다. 무솔리니의 시체는 그가 땅에 묻힌 지 1년 뒤 도난당한다. 이 사건은 큰 파장을 부른다. 지지자에게는 정치적 상징이, 반대파에게는 분노의 대상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결국 도난 4개월 뒤 무솔리니의 사체는 밀라노의 한 성당에서 발견됐고, 이후에 여러 곳을 전전하다가 1957년 고향에 안장된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1966년 3월 미국의 한 외교관이 그의 묘를 찾았다. 그는 ‘무솔리니, 대뇌 일부’라고 쓰인 봉투를 가지고 왔다. 미국이 1945년 채취해 실험에 사용한 것이다. 지금도 그의 사체가 완전히 묻혔는지는 알 수 없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