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세계를 속인 거짓말-문명과 전쟁편
입력 2010-01-14 17:51
이종호/뜨인돌/세계를 속인 거짓말-문명과 전쟁편
3일 안에 화살 10만대를 얻어오라는 주유의 명에 제갈량은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밤에 조조군을 공격하러 온 것처럼 배를 몰아 적이 쏜 화살 10만대를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손에 넣는다. 제갈량의 지략이 어느 때보다 빛을 발한 ‘적벽대전’은 삼국지의 인기 에피소드 중 하나다.
하지만 건축공학도이자 독서광인 독특한 이력의 저자 이종호는 제갈량의 영웅담은 ‘삼국지’를 쓴 나관중의 공상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적벽대전’은 우선 이름부터 잘못됐다는 것이다.
대신 ‘오림(烏林·하북성 홍호현 동북쪽 장강 북쪽 연안)대전’이라는 표현이 맞다고 주장한다. 진수가 정사 ‘삼국지’에서 애매하게 ‘적벽대전’이라고 기록한 데서부터 잘못 알려졌고 나관중이 본격적으로 적벽대전을 허구로 채워 넣어서 오인은 더욱 굳어졌다는 것이다.
화살 10만대에 대해서도 ‘위략’서에는 손권이 적진을 탐방하다 조조군에게 발각돼 화살을 맞았고, 이 때문에 배가 기울어지자 다른 쪽으로 돌려 화살을 맞았다고 기록돼 있다. 이것이 ‘삼국지’보다 앞선 ‘삼국지평화’에 주유가 조조에게 화살을 빌린 것으로 각색돼 알려졌고, 훗날 나관중이 ‘삼국지’에서 이를 제갈량으로 바꿨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이종호는 또 청나라 학자 장학성의 말을 빌어 “‘삼국지’는 70퍼센트가 역사적 사실이고 나머지 30퍼센트는 허구인데, 그 폐해가 적지 않다”면서 제갈량을 삼국지 주인공을 만들려고 천재적인 군신으로 묘사한 나관중의 부실한 저술을 에둘러 비판한다.
진시황에 관한 역사 왜곡을 통해서는 승자가 기록한 역사의 편파성을 꼬집는다. 네로황제처럼 희대의 악마로 그려진 진시황제는 역사적으로 과소평가 받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그의 광기를 드러내는 ‘분서갱유’의 배경을 밝혀 진시황의 이미지 복권을 시도한다.
시중에 나온 불온서적을 불태운 ‘분서’ 행위는 진시황제 33년(기원전 214년) 학자의 사상통제를 위해 단행된다. 당시 진나라는 나라의 질서를 세우기 위해 법령에 따른 법을 제도화하고 통일 전 제도에 집착하는 기득권 세력을 경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서’는 ‘문화말살’로 불릴 정도로 무자비하지 않았다. 우선 천문 지리 점술 등 각종 실용서는 남겨 놨다.
또한 당시 학문은 구전으로 전수됐기 때문에 학문 억압에 큰 효과가 없었다. 학자를 땅에 묻은 ‘갱유’도 타 시대의 군주에 비하면 차라리 ‘양반’이다. 충실한 신하나 정부의 고관을 서슴없이 땅에 묻은 순장제도를 행한 군주들은 숱하게 많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진나라의 통치는 15년도 지탱하지 못한 탓에 진시왕이 후대에 폭군의 이미지로 부각됐을 것이라는 설명도 잊지 않았다.
이선희 기자 su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