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근현대 미술가 작품 속에 투영된 가족 이미지는… ’가족을 그리다’
입력 2010-01-14 17:51
박영택/바다출판사/가족을 그리다
가족은 두터운 울타리다. 누구나 태어나는 순간 누군가의 가족이 된다. 하지만 가족은 시대와 개인에 따라 각기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어떤 이에게는 사랑과 그리움의 대상이지만 어떤 이에게는 벗어날래야 벗어날 수 없는 질긴 굴레이다.
미술평론가이며 대학에서 미술경영학을 가르치는 저자는 우리의 미술 작품 속에 드러난 가족의 맨얼굴을 더듬는다. 미술 작가들에게 가족은 무엇이며, 그들은 작품 속에서 가족을 어떤 모습으로 그려냈는지를 꼼꼼이 들여다본다.
70여명의 한국 근현대 미술 작가들이 가족을 형상화한 회화, 조소, 사진 등 110점의 작품 속에는 한국 근현대사의 모습이 응축되어 있다.
1929년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된 이영일(1904∼1984)의 ‘시골 소녀’는 졸고 있는 동생을 포대기로 들쳐 업고 맨발로 서 있는 소녀와 땅바닥에 떨어진 낱알을 주워 모으고 있는 소녀의 모습을 담았다. 식민지 시대 우리들의 궁핍한 삶을 엿볼 수 있는 그림이다. 삼대에 걸친 열일곱 명의 가족을 그린 배운성(1900∼1978)의 1930년 초반 작품 ‘가족도’는 거의 사라진 전통적인 우리 대가족제도의 잔해를 보여준다.
이중섭(1916∼1956)은 가난 때문에 일본으로 떠나 보내야 했던 아내와 두 아들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그림엽서를 많이 남겼다. 54년 일본에 있던 아들에게 보낸 그림엽서 ‘길 떠나는 가족’(사진)은 소달구지에 가족을 태우고 가는 자신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험난한 현실에서 벗어나 가족이 영원히 헤어지지 않고 다시 하나가 되기를 바라는 염원이 깃들어 있다고 작가는 해석한다.
안창홍(1953∼ )의 2007년 작 ‘봄날은 간다 3’은 가족사진을 갈가리 찢은 후 다시 봉합한 콜라주 작품으로 가족이 서로에게 상처를 안기는 존재일 수도 있음을 표현한 것이다.
이 밖에도 이쾌대 천경자 장욱진 박수근 이왈종 김덕기 박광선 등 주요 작가들의 가족을 담은 작품들을 시대적 배경 속에서 하나 하나 분석한다.
저자는 “한국 근현대 미술에 투영된 가족 이미지는 당대의 가족 관계와 개념의 변천사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며 “그들의 그림에는 당대인들이 꿈꾸었던 이상적인 가족상이 담겨 있는 동시에, 그로부터 요원한 현실에 대한 자괴감이 서려 있다”고 밝혔다.
라동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