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박래창 (14) 해외 출장때 지인 여학생 음악 콩쿠르 입상 도와

입력 2010-01-14 21:18


사업상 한창 해외 출장을 다니던 1991년이었다. 스위스 취리히의 한 호텔 로비에서 아는 얼굴을 만났다. 소망교회 고등부에서 가르쳤던 양고운이라는 여학생으로 지금은 유명 바이올리니스트가 됐다. 그 때는 서울대 음대 1학년이었다.

세계적 명성의 파가니니 콩쿠르에 나가려고 어머니와 둘이 이탈리아 제노바로 향하는 중이었다. 반갑게 인사한 뒤 헤어졌는데 마침 콩쿠르 예선이 열리던 날 나도 이탈리아에 있었고, 저녁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 시간이 있어 새벽 기차를 타고 제노바로 향했다.

극장에 도착해 보니 예선이 오후부터라고 해서 주변을 둘러보다 고운이 어머니를 만났다.

“왜 혼자 나오셨어요?” “네, 콩쿠르 전에는 한창 예민하니까요. 그런데요, 장로님! 부탁 하나 드려도 될까요?”

고운이 어머니는 호텔로 같이 가서 고운이를 위해 기도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순수 국내파로 국내에서만 공부한 고운이가 해외에 나와 얼마나 긴장이 될지 짐작이 갔다. 호텔에 가 안수기도를 해 주니 고운이는 눈물을 펑펑 쏟았다.

“뭐가 그리 걱정되니?” “선생님! 낯선 무대에 올라가서 실수하면 어쩌죠? 제 실력대로 연주도 못 해보고 떨어질까 봐 자꾸 걱정이 돼요.” “그러면 네 순서 전에 가서 좀 보지 그러니?” “그럴 수가 없어요. 연주자들은 징크스가 있거든요. 다른 사람이 지정곡을 연주하다 틀리는 것을 보면 저도 똑같은 자리에서 틀리게 돼요.”

듣고 보니 그럴 만도 했다. 그렇다고 연주 전 준비를 도와야 할 고운이 어머니가 왔다 갔다 할 수도 없었다. “그러면 내가 봐 주면 되겠구나!” “정말요? 선생님께서요?”

그렇게 해서 오후 내내 다른 연주자들을 관찰했다. 곧 공통점이 보였다. 다들 낯선 무대이기는 마찬가지지만 무대에 올라 마침 심사위원 쪽으로 서고, 두 연주곡 사이에도 박수가 나오지 않게 미리 제스처를 취하면 연주가 물 흐르듯 진행되고 심사위원들 반응도 좋았다. 그렇지 않고 서는 방향을 잘못 잡거나 중간에 머뭇거린 연주자는 눈에 띄게 연주가 흔들리고 때로는 틀어진 분위기를 못 이기고 중도에 무대를 내려오기도 했다.

호텔로 돌아와 이런 이야기를 해 주니 고운이는 “선생님께서는 이런 무대를 처음 보신다면서 어떻게 그리 잘 아세요?”라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로서도 이유를 몰랐지만 사업을 해 왔기 때문에 그런 파악이 빨랐던 것 같다.

아쉽게도 비행기 시간 때문에 고운이의 연주를 못 보고 제노바를 떠나야 했다. 한국에 와 있는데 고운이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본선에 진출했어요. 선생님 덕분입니다!” 물론 고운이의 실력에 따른 결과였지만 내 덕분에 긴장이 풀려 실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었다는 덕담이었다.

본선은 며칠 후 한국 시간으로 자정이었다. 나는 교회학교 교사들에게 전화해서 그 시간에 자지 말고 모두 고운이를 위해 기도하자고 했다.

결과적으로 고운이는 그 콩쿠르에서 5위로 입상했다. 한국 국적 바이올리니스트가 그 같은 규모의 콩쿠르에서 입상한 것은 처음이라고 들었다. 고운이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있으셨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과정에 나에게 작은 역할을 맡겨 주신 것을 생각하면 빙그레 웃음이 난다.

그 때는 그렇게 사업과 교회 사역이 모두 잘 진행되던 때였다. 그런데 얼마 후 나도 깨닫지 못한 사이 사업에 중대한 전환점이 찾아왔다.

정리=황세원 기자 hws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