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 대참사 현장] 정부 청사 성한 곳 없어… 섬 전체가 폭격맞은 듯

입력 2010-01-14 01:25

“오 하나님, 오 하나님.”

지난 12일 오후(현지시간) 아이티 역사상 240년 만에 발생한 최악의 강진으로 붕괴된 건물 앞에서 울부짖던 한 남자 부상자의 절규였다. 이마에선 선홍빛 피가 흘렀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격렬한 지진이 아이티 전체를 뒤엎어 놓았다”고 묘사했고, 보스턴 헤럴드는 “총체적인 혼란에 빠진 아이티”라고 표현했다.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에 있는 주요 기관 건물 상당수가 붕괴됐다. 흰색으로 빛나던 대통령궁의 둥근 지붕은 더 이상 아이티의 상징이 아니었다. 공공사업부, 문화사업부 등 정부기관과 의회 청사 등도 성한 건물이 거의 없을 정도다. 르네 프레발 대통령의 신변엔 이상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유엔 아이티 안정화지원단 사령부 건물도 상당 부분 파손돼 건물 잔해에 수많은 사람이 깔려 있고, 유엔 관계자 상당수도 실종된 상태다. 당시 200∼250명의 직원이 근무 중이었다. 13일 밤늦게까지 중국 출신 8명, 요르단 출신 3명, 브라질 출신 4명 등 수십명이 숨진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또 유엔 평화유지군 소속 튀니지 사령관도 숨진 것으로 추정됐고, 실종자 중에는 유엔 특사인 에디 아나비도 포함됐다. 구조대는 유엔 건물 잔해를 뒤진 끝에 부상한 생존자와 시신들을 수습하기 시작했다.

현지에 파견된 미국 정부 관계자는 “하늘이 먼지로 꽉 차 회색빛을 띠고 있다”며 “모든 사람이 공포에 떨고 있다”고 전했다. 거리 곳곳에는 시신들이 널브러져 있고, 도움을 호소하는 부상자들의 비명이 도시를 가득 채우고 있다고 목격자들은 전했다.

전화와 인터넷 등 통신까지 끊겨 정확한 피해 규모를 파악하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사망자가 수백명에서 많게는 수천명에 이를 것이라는 얘기들이 흘러나오고 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기자회견에서 이번 지진으로 수백명이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런 탓에 단문을 주고받을 수 있는 트위터가 주요 연락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주민들은 파괴된 슈퍼마켓 등지에서 생필품을 훔치는 등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한편 10시간 이상 건물 더미에 묻혀 있던 한 여성 구호 요원은 남편에 의해 극적으로 구조되기도 했다. 남편 프랭크 스롭씨는 160㎞ 떨어진 곳에서 수도까지 차를 몰고 와 한 시간 이상 땅을 파낸 끝에 부인 질리안씨를 구해냈다.

카리브해 쿠바 인근에 위치한 인구 900만명의 아이티는 문맹률이 45%에 달한다. 전체 인구 중 약 70%가 하루 2달러 미만의 돈으로 생활할 정도로 최빈국에 속한다. 라틴아메리카 국가 가운데 첫 독립국가지만 1957년부터 30여년간 뒤발리에 부자의 독재정치로 부패와 혼란이 지속됐다. 2004년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 당시 대통령이 축출된 뒤에는 유엔 평화유지군이 치안을 맡고 있다.

김영석 기자 y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