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주의 시대 ‘굽은 판결’ 반성없는 사법부… 재심 무죄확정 17건 중 판결문 사과는 2건 뿐

입력 2010-01-13 21:54

과거 군사독재 정권 시절 법률과 양심에 따라 판결이 이뤄지지 못했던 시국·공안 사건 등 과거사에 대한 사법부의 반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독재정권이 무너지고 민주화를 거치면서 부끄러운 과거사를 반성하는 목소리가 우리 사회 곳곳에서 나오고 있지만 사법부는 법관의 책무를 저버렸던 선대의 과오를 반성하고 사과하는 데 아직도 인색하다.

특히 법원이 재심(再審)을 통해 과거 재판부의 시국·공안 사건 판결을 뒤집고 사건 관련자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도 선배 법관들을 대신해 사과하는 데는 소홀한 것으로 드러났다.

본보 취재팀이 13일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위)가 재심 및 국가 사과 권고 결정을 내린 사건 44건 중 재심 법원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은 1960∼80년대 시국사건 17건을 전수 조사한 결과 판결문에 사과의 뜻을 담은 재심 재판부는 오송회, 아람회 사건 단 2건에 불과했다.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 사건 등 3건은 재심 재판부가 과거 판결을 뒤집고 수십년 만에 무죄를 선고하면서도 어떤 형태의 유감 표명 또는 사과도 하지 않았다. 이수근 간첩조작 사건 등 3건에선 재심 재판부가 원심 판결의 잘못을 인정했지만 사과로 이어지지 않았다. 납북 어부 서창덕 간첩조작 사건 등 8건은 재판부가 구두로 유감을 표명했지만 판결문에 반영되지 않았다. 1건은 별도로 사과문이 게재됐다.

진실위는 이들 사건을 인권을 침해한 판결이라고 규정하고 진실 규명과 재심 및 국가의 사과를 권고했다. 진실 규명을 거쳐 재심이 개시된 사건 모두에서 불법구금, 고문, 가혹행위 등 수사기관의 불법행위가 있었음이 인정됐다. 그러나 대부분 재심 재판부는 선배 법관들이 당시 증거가 조작됐다는 점을 밝혀낼 책무를 다하지 못했다고 지적하지 않았다.

대법원 사법사편찬위원회가 사법부 60년사를 정리해 이날 발간한 ‘역사속의 사법부’ 책자에도 과거 잘못을 반성하는 내용은 구체적으로 적시되지 않았다. 책자 속에 ‘정치적 상황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는 부분이 포함되기는 했으나 이용훈 대법원장이 취임 이후 과거사 반성에 대한 의지를 수차례 강조한 점을 감안하면 사법부의 통렬한 자기반성으로 보기는 부족하다는 평가다.

사법사편찬위는 발간사에서 “어두운 과거와 부끄러운 역사를 한사코 부인하고 거부하려 한다면 자기 존재의 근거를 허무는 일”이라면서도 “지금의 시각으로 손쉽게 과거의 잘못을 매도하고 단죄하는 것도 역사를 대하는 옳은 길은 아닐 것”이라고 밝혔다.

선정수 양진영 기자 jsun@kmib.co.kr